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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부 요약


< 전편          다음편 >

3. 종교 지도자들의 적개심
4. 전도 여행의 진행
- 성내는 것 논평, 잘 균형된 인격


 

제 149 편 두 번째 전도 여행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서기 28년 10월 3일 ~ 12월 30일
. 장소 : 갈릴리의 여러 도시


149:0.1 갈릴리에서 두 번째 대중 전도 여행은 서기 28년 10월 3일 일요일에 시작되었고 거의 석 달 동안 계속되어 12월 30일에 끝났다. 예수와 열두 사도, 새로 모집한 117명의 전도사 집단과 관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였다.


야고보 세베대가 새전도사들에게 선서를 시행하였고, 예수가 말했다. “이제 맡겨진 책임대로 일하러 가라. 나중에 유능하고 충실한 사람으로 보였을 때,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도록 너희를 세울 것이다.”


이 여행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를 수행했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각각 전도사를 열두 명쯤 데리고 전도하고 가르쳤다. 이 둘째 전도 여행의 목적은 주로, 새로 훈련받은 117명의 전도사들에게 실용적 경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 기간 내내, 다윗 세베대는 벳세다 아버지 집에서 영구 본부를 유지했다. 이곳은 예수의 일을 위한 정보 교환소였고 봉사를 연결하는 역이었다. 다윗은 안드레의 승인을 얻어 모든 일을 솔선해서 진행하였고, 확장되는 하늘나라 사무를 위해 40~50명의 전달자들을 고용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다윗은 고기잡이 일로 어느 정도 자신을 부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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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널리 알려진 예수의 이름


149:1.1 예수의 이름은 특히 병 고치는 자로서, 팔레스타인의 구석구석, 그리고 시리아 여러 지역으로 알려졌다. 이 여행에서 예수는 병 고치는 기적을 전혀 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병자 몇십 명이 병 고침을 찾으려는 맹렬한 믿음으로 건강과 행복을 되찾았다.


땅에서 예수의 공생애 동안 내내 이해할 수 없는 치유 현상이 계속하여 나타났다. 석 달 동안 전도 여행 중에, 1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의 무의식 치유를 받았고,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예수의 이름을 더욱 퍼뜨렸다. 예수가 수혜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해도 소용없었다.


주는 사도들에게 어떻게 이 치유가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몇몇 경우에 “권능이 내게서 나갔음을 깨닫는다” 라고 말했을 뿐이고, 주는 사도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때, 어느 아픈 아이를 만졌을 때 말씀하기를, “생명이 내게서 나갔음을 깨닫는다.”


149:1.4 주가 직접 말씀하지 않았으므로,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명하려는 시도가 주제넘을 터이지만, 병고치는 기적으로 보이는 이 일들은 다음 세 가지 영향이 공존한 결과였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1. 인간의 마음 속에 끈질기게 치유를 강하게 바라고 생생한 믿음이 있는 것. 육체의 회복 보다 오히려 영적 이익 때문에 치유가 바람직하다.

2. 그러한 인간의 믿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 창조자의 큰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 그는 몸 안에 시간을 초월하는 창조적 치유 권능과 특권을 실제로 소유했다.
3. 인간의 필요와 이를 채우는 신의 권능이 접촉할 때 아버지가 달리 뜻하지 않으면, 그 둘이 하나가 되고, 인간 예수가 의식하지 않고서 치유가 일어났으며, 즉시 신다운 본성이 이를 인식했다. 그러면 병을 고친 이 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오랫동안 알려진 큰 법칙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렇다: 아들 창조자가 바라고 영원한 아버지가 뜻하시는 것은 동시에 존재한다.


예수가 친히 계신 앞에서, 심오한 인간의 믿음은 예수를 수행하는 하늘 성격자들로 말미암아 치유가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따라서 예수는 그가 계신 앞에서 사람들이 힘찬 개인적 믿음으로 스스로 고치도록 흔히 버려두었다는 것이 기록된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은 온전히 이기적 목적으로 치유받기를 추구했다. 티레의 어느 부유한 과부는 여기저기 예수를 따라다니는 동안, 치료받기 위하여 돈을 계속 내밀고, 한번도 하늘나라 복음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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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들의 태도


149:2.1 예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았다. 예수의 원래 가르침대로 유지되었다면 세상의 모든 민족과 종교가 빨리 하늘나라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 추종자들의 수정된 복음은 모든 다른 민족ㆍ종족ㆍ종교들이 받아들이는데 더 어렵게 만들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편지를 많이 썼고, 이 편지들이 신약 속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 기독교가 주의 복음을 많이 담고 있지만, 예수가 가르치지 않은 것이 허다하다. 페르시아의 신비교와 그리스 철학을 흡수한 외에도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1. 기독교의 속죄 교리는 복음을 유대인의 신학과 직결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는 유대인을 설득하지도 못했고, 다른 민족과 세대의 많은 사람 혼동하게 하고, 기독교를 피하게 만들었다.

2. 예수라는 인물에 치중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였고, 이것은 다른 민족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런 추종자들의 배려가 영감을 받은 예수의 삶이 빛을 잃게 만들고, 구원의 말씀―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이 형제임―을 대신하도록 버려두고 싶지 않다.


예수의 종교 교사들은 공통으로 지니는 진리 (이 중에 많은 것이 직접ㆍ간접으로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온다) 진리를 인정하면서, 다른 종교에 접근해야 한다. 지나친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149:2.6 일반 대중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호응을 얻은 것은 육체의 치유였다. 도덕적으로 종살이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를 더욱 찾았고, 그는 변함없이 구원의 길을 가르쳤다.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를 찾아 왔고 그는 생명의 빛을 드러냈다. 귀는 언제라도 인류의 슬픔을 들으려고 열려 있었고, 그는 언제나 보살핌을 찾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창조자가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 육신화하여 땅에 계실 때, 기적같은 사건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예수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기적을 통해서 예수한테 다가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나사렛 예수가 땅에서 초물질 행위를 연출했던 유일한 종교 창시자였지만, 이 훈계는 틀림없다.


미가엘의 사명에서 가장 놀라운 혁신적 특징은 여자에 대한 태도였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말씀을 여자에게 전하는 것보다 불에 태우는 것이 낫다”고 선포했던 율법학자들의 가르침 앞에서 이렇게 행하는 최고의 용기를 가졌다.


오랜 세월동안 무시되고 노예처럼 고된 일을 하는 상태로부터, 예수는 한 세대 안에 여자들을 들어 올렸다. 후일에 기독교가 이 고귀한 모범을 따를 도덕적 용기가 모자란 것은 예수의 이름을 주제넘게 가져간 종교에 한 가지 부끄러운 일이다.


예수는 미신에 매어 있지 않았고, 종교적 편견이 없었다. 의미 없는 예식에 종처럼 헌신하는 것을 비난했고, 물질적 예배의 잘못됨을 밝혔다. 자연의 재난, 뜻밖의 사고, 기타 재앙은 신이 내리는 심판이나 섭리의 신비로운 작용이 아니라고 감히 가르쳤다. 대담하게 사람의 영적 자유를 선포했고, 육체를 가진 필사자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했다.


149:2.11 전통 대신에 현실을 존중하였고 허영과 위선이 가득한 모든 허식을 치워버렸다. 그래도 두려움 없는 이 하나님의 사람은 파괴적인 비난을 퍼붓거나 그 시대의 종교ㆍ사회ㆍ경제ㆍ정치 관습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점진적 진화를 부르짖었다.


예수는 강요하지 않고서 추종자들로부터 복종을 얻었다. 독재자처럼 행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고, 아무도 그의 지시를 분개하지 않았다. 제자들에 대하여 절대 권한을 가졌지만, 아무도 항의한 적이 없었다. 추종자들이 그를 주라고 부르도록 두었다.

뿌리 깊은 종교적 편견이나 가르침이 정치적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예수를 만난 모든 사람이 주를 찬미하였다. 가르침의 독창성과 권위에 놀랐고, 악의적인 질문자들을 향한 인내심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희망과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군중은 그저 품위 있는 말씀을 듣고 소박한 생활을 구경하려고 몇 주 동안 따라다니곤 하였다. 헌신하는 남녀들이 거의 초인간적 애정으로 예수를 사랑했다. 오늘날도 미래에도,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사람들은 더욱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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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교 지도자들의 적개심


149:3.1 평범한 사람들은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환영하였고,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놀라고 적개심을 품게 되었다. 예수는 율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비유를 들어 가르쳤다. (비유를 사용했을 때, 그 목적을 위해 이야기의 한 가지 특징만 활용하도록 설계했다. 예수의 가르침에 관한 많은 잘못된 생각은 그의 비유에서 우화를 지어내려고 시도한 것에 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젊은 아브라함이 최근에 전향하였고, 세 첩자가 도망한 것 때문에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 되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두려움과 편견에 더욱 눈이 멀었고, 한편 하늘나라 복음의 매력 있는 진리를 계속 물리침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사람들이 안에 깃드는 영의 호소에 귀를 막을 때, 그 태도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의 몸과 머리는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것은 깃드는 영이다. 이 영에게 호소함으로 인류는 하나가 되고 형제가 된다. 그러나 유대인의 많은 지도자가 복음의 영적 호소에 마음 문을 닫았다. 이날부터 그들은 주의 파멸을 계획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들은 예수를 유대인의 신성한 율법의 가르침을 어긴 종교범으로 잡아, 선고하여 처형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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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도 여행의 진행


149:4.1 이 전도여행에서 예수는 대중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분의 도시와 마을에서 신자들과 함께 저녁수업을 많이 열었다. 새로 된 어느 전도사가 예수에게 분노에 대하여 물었고, 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분노는 지적 및 육체적 본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물질적 현상이다. 분노는 관용적인 형제애 부족과 자기통제의 부족함을 나타낸다. 분노는 건강을 소모하고, 지능의 질을 떨어뜨리며 인간의 혼을 가르치는 영 선생을 방해한다. 사랑이 너희 마음을 지배하게 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같지 않는 동물처럼 분노를 터뜨리는 경향을 피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라.”


바로 이 기회에 주는 균형 잡힌 성품을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말했다. 또한 직업 전문성을 위한 헌신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그로 인한 다양성과 삶의 활동이 외면당하는 것은 비판했다. 어떤 미덕이라도 지나치게 실행하면 악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주는 언제나 절제를 선포하고 삶의 문제를 일관되게 비례적으로 조정하도록 가르쳤다. 지나친 동정과 연민은 심각한 정서적 불안정으로 변질되고, 열정은 광신주의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수는 지나친 보수적 평범은 지루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나서 예수는 용기와 믿음이 때로는 생각지 못한 영혼을 무모함과 추측으로 인도할 수 있고, 신중함과 조심이 너무 지나쳐 비겁과 태만으로 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별난 행동을 피하면서 독창성을 기르라고 권고했다. 신성함이 없는 경건함, 경건함이 없는 동정심을 호소했다. 두려움과 미신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예배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는 긴장과 폭풍 속에서 살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적들은 그를 잡으려고 계속 덫을 놓았지만, 결코 그를 잡지 못했다. 지혜롭고 학식 있는 자들이 그를 넘어지게 하려고 애썼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그를 토론에 말려들게 하려 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사람을 깨우치고 위엄이 있고 단호하였다. 적들의 계속된 압력과 맞서면서, 한 번도 비열한 술수를 쓰지 않았다. 그들은 서슴지 않고 온갖 종류의 거짓되고 부당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149:4.6 많은 남녀가 생계를 위한 직업에 힘써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삶에 대한 문화적 관계를 넓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동료의 생활과 행적을 모르고 지내면서 만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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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족에 관한 교훈


149:5.1 저녁 회의에서 시몬이 물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하고 만족해할까요? 만족함은 종교적 문제입니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시몬,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행복하다. 자신 안에 사는 아버지의 영에 인도되고 지도하심을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 성서에서 현자의 말씀이, ‘올바른 자의 작은 재산이 악한 자 여럿의 재산보다 나으니’, ‘주를 경외하고 조금 가진 것이 큰 보물과 아울러 골칫거리를 가진 것보다 좋으며, 올바르게 조금 가진 것이 옳지 않게 큰돈을 버는 것보다 낫다.’ ‘즐거운 마음은 약처럼 좋다.’ ‘평온하게 한 줌 가진 것은 슬퍼하며 영이 괴로운 가운데 넘치게 풍부한 것보다 낫다.’


“사람의 슬픔의 대부분은 야망과 자존심을 상실해서 생긴다. 비록 땅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지만, 성실하게 힘쓴 뒤에 즐겁게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손에 들어온 것을 최선으로 활용해야 한다. 사람의 허다한 문제는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에서 생긴다. ‘사악한 자는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달아난다.’ ‘사악한 자에게는 평화가 없다.’


“거짓된 평화와 일시의 기쁨을 찾지 말고, 오히려 믿음의 확신과 신의 아들이라는 보장을 찾아야 한다. 이것들은 정신적 안정과 만족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낳는다.”


예수는 도저히 이 세상을 “눈물의 골짜기”로 여겼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이 세상이 오히려 파라다이스로 올라가는 영원한 불멸의 영들이 태어나는 구체, “혼을 만드는 골짜기”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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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149:6.1 빌립이 말했다: “주여, 왜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가르치고, 당신은 두려움 없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 두 가르침을 조화시켜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했다:


“나의 자녀들이여, 처음에는 두려움을 통해서 사람이 신을 공경하는 것을 배운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려고 왔으므로, 여러분이 노예처럼 두려워하고, 질투하고 진노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한다. 자유롭게 예배하는 길로 즐겁게 마음이 이끌리도록,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여러분에게 가르치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되는 시대 속에서 두려움에서부터 고뇌와 불안 단계를 거쳐 경외심에 이르기까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격과 성품을 비로소 이해하고 체험할 때, 그는 그처럼 훌륭하고 완벽하고 보편적인 우주의 영원한 아버지를 점점 사랑하게 된다.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이 땅에서 사람의 아들이 이룰 사명이다.”


“총명한 아이들은 좋은 선물을 받을까 하여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풍부히 받았은즉, 은혜를 인식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비는 구원으로 이끌며, 한편 하나님의 사랑은 지적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그를 예배하게 한다.


“하나님의 권능은 사람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일으켜도 그 성격의 고귀함과 올바름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얻고 즐거이 그를 예배하게 한다. 내가 온 것은 신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사랑하고, 의미 없는 예식을 치르는 대신에 봉사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려 함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에게는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하는 것이 아직도 참말이다. 그러나 빛이 더욱 충만히 다가왔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은 무한자가 하시는 일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 본성때문에 찬미할 마음이 생기게 된다.


149:6.6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를 존경하라고 훈계를 받지만,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 부모를 사랑하는 수준까지 올라간다. 아버지는 자연히 자식을 사랑하지만, 아이는 무슨 일을 아버지가 할 수 있는지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무서워하고 의존하고 존경하는 수준을 거쳐서, 사랑을 이해하고 깊이 존중하기까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여러분의 조상은 ‘하나님―전능한 임금―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쳤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온통 자비로운 아버지―를 사랑하라.’ 가르칠 것이다.


“나는 하늘나라를 선포하러 왔다. 거기에는 높고 강력한 임금이 없다. 이 나라는 신의 가족이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여러분 아버지이다. 나는 그의 아들이요 여러분도 또한 아들이다. 땅에서 사는 인생에서 육체를 입고 우리가 형제가 되었다. 그러니 하나님을 임금이나 주인으로 섬기지 말고, 창조자인 그를 존경하기를 배우고, 너희의 아버지로 공경하며, 자비로운 변호자로 사랑하라. 궁극에는 더 성숙하게 영적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아버지, 사랑이 깊고 전적으로 지혜로운 아버지로 예배하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서 거짓된 겸손 개념이 자라고 많은 위선이 생긴다. 내 아버지가 수여하는 영은 분명히 그 신성한 근원으로, 필사자의 인간 혼은 이 깃드는 영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자녀가 된 것이며, 그 혼은 신다운 영과 함께 영원한 아버지가 계신 바로 그 앞까지 올라간다.


“의미 없이 비천하게 거짓 겸손을 떠는 것은 구원의 근원을 이해하고 영에게서 태어난 여러분의 혼의 운명을 인식하는 것과 모순된다. 하나님 앞에 마음 속 깊이 겸손함은 아주 적절하다. 사람들 앞에서 온유함은 칭찬할 만하여도, 자의식하면서 몹시 눈을 끌고 싶어 겸손을 떠는 위선은 유치하며, 하늘나라의 깨우친 아들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149:6.11 “하나님 앞에서 온유함이 영적 기원으로부터 나오게 하고, 혼자만 옳다는 우월감을 자각하며, 스스로 속이지 말라. 선지자가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걸으라’ 말하였다. 아버지는 자만을 멸시하고 위선과 불의를 매우 싫어한다. 어린아이를 내가 무척 자주 언급하였으니, 그런 태도와 반응이 필사 인간이 하늘나라의 영적 실체로 들어가는 데 아주 필요 하다.


“‘너희가 입으로는 하나님께 가까이 있어도 마음속에서는 멀도다’ 하고 예레미야는 많은 사람을 잘 묘사하였다. '사제들은 보수를 받고 가르치며, 선지자들은 돈을 받고 점을 친다. 동시에 저희는 경건함을 고백하고, 주가 저희와 함께 있다고 선포한다’ 하고 말한 선지자의 끔찍한 경고를 여러분은 읽지 않았느냐?. ‘마음속에 해악이 있으면서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는’ 자, ‘입으로는 칭찬하나 마음에 두 생각을 품는’ 자에 대하여 경고를 받지 않았느냐? 사람을 믿는 자의 모든 슬픔 가운데, ‘믿었던 친구의 집에서 상처를 받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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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벳세다로 돌아가다


149:7.1 시몬 베드로와 상의하고 예수의 승인을 얻어서, 안드레는 12월 30일에 벳세다로 돌아오라는 지시를 전령들에게 전달하라고 다윗 세베대에게 주었다. 사도들과 전도사들은 모두 세베대의 집에 도착했다.


이 일행은 벳세다와 가버나움에서 묵었고, 가족과 친구들을 찾아보거나 물고기를 잡으로 가도록 2주 동안 휴가를 얻었다. 함께 벳세다에서 지낸 이삼일은 정말로 상쾌하고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고참 선생들조차 새 전도사들이 자기 체험을 이야기할 때 교훈을 얻었다.


둘째 갈릴리 전도 여행에 참여한 전도사 117명 가운데 약 75명이 시험을 견디었고, 휴가를 마친 뒤에 봉사에 배치될 준비가 되었다. 안드레ㆍ베드로ㆍ야고보ㆍ요한과 함께, 예수는 세베대의 집에 남아서 하늘나라의 복지와 확장에 관한 회의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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