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서 재단 번역본 사이트            
유란시아서 4부 요약


< 전편          다음편 >
유란시아서 4차 개정 합본 - 용어 통합


제 143 편
사마리아를 거쳐서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서기 27년 6월말 ~ 8월 중순
. 활동장소 : 사마리아 지역



143:0.1 서기 27년 6월말에,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반대가 커졌기 때문에, 예수와 열두 사도는 예루살렘을 떠났다. 아리마대와 탐나에서 온 무리들의 방문 요청으로 그곳에서 2주 넘게 시간을 보냈다. 여러 사람이 하늘나라 소식을 들으려고 멀리 안티파트리스에서도 왔다.

남부 사마리아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사도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하여 많은 편견을 버리는 데 성공했지만 유다는 사마리아인들을 사랑하기 어려웠다. 7월 마지막 주에 파사엘리스와 아켈라이스를 향하여 떠나려고 준비했다.

▲Top

 

 

1. 아켈라이스에서 전도하다

143:1.1 8월의 처음 절반 동안 그리스풍의 도시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본부를 차렸다. 이곳에서 순전히 이방인― 그리스인ㆍ로마인ㆍ시리아인―들에게 전도하는 첫 경험을 얻었다. 이 로마 시민들과 접촉하면서 사도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하여 새로운 반대에 부닥쳤다. 예수는 이들이 하늘나라 복음에 반대하는 이유를 주의 깊게 들었다.

빌립의 질문은 사도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었다. 빌립: “주여, 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우리의 가르침이 약자와 노예에게 적합하다로 말합니다. 이방인의 종교가 강한 것을 얻는데 영감을 주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가 우리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합니다. 당신의 종교는 이 세상과는 맞지 않고 사람들은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살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방인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합니까?”

토마스, 나다니엘, 열심당원 시몬, 마태의 비슷한 이유를 듣고 난 뒤에,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말했다:

예수는 :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하는 성품을 온 인류에게 드러내려고 내가 이 세상으로 왔다. 내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과 상관없이 나는 이 일을 할 것이다. 파라다이스에 계시는 내 아버지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온 우주를 다스리신다. 인간의 진보가 이룰 궁극의 목표는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경건하게 인식하는 것과 사람이 형제임을 사랑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복음이 노예와 약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누가 말하느냐? 내가 선택한 사도들도 약한 사람들이냐? 요한이 약한 사람처럼 보이느냐? 내가 두려움의 노예처럼 보였느냐? 난 이 세대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하늘나라의 복음은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와 매인 자―,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전파되어야 한다.

143:1.6 “내 아버지가 사랑의 하나님이고 자비 베풀기를 기뻐한다고 해서, 하늘나라의 봉사가 단조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 파라다이스 상승은 최고의 모험이며, 견고한 성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하늘나라 복음에 대한 충성으로 죽음을 당할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삶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깊은 형태의 용기와 헌신이 필요하다.

“세상의 어떤 군대도 너희의 용기를 보여줄 수 없다. 너희와 충성스러운 후계자들은 좋은 소식―하나님이 아버지요 사람들이 형제임―을 외치며 온 세계로 떠나갈 것이다. 육체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이고, 영의 용기는 더 높은 종류의 인간다운 용기이다.

예수는 이 선언을 확대하고 예를 들면서 아주 자세히 말씀을 이었다. 이 말씀은 예수가 일찍이 열두 사도에게 가장 열심히 하신 연설 중에 하나였다. 주는 뜨거운 감정이 눈에 뜨일 정도로 사도들에게 말씀한 적이 드물었다.

사도들이 대중에게 전도하고 개인을 상대로 봉사한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바로 그날부터 그들이 전파하는 소식에는 용기가 솟아오르는 새로운 음성이 담겨 있었다. 열두 사도는 하늘나라의 새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영을 계속 몸에 익혔다.

▲Top

 

 

2. 자아-정복에 대한 교훈

143:2.1 주는 인간의 자아-통제를 통달한 표본이었다. 주는 욕설을 듣고 욕하지 않았다. 적들에게 비난 받았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올바른 판결에 자신을 맡겼다.

안드레가 물었다: “주여, 요한이 가르친 것 처럼 금욕을 실천해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의 가르침인 자아-통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까? 금욕과 자제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예수는 대답했다: “요한은 조상들의 빛과 율법에 따라 올바른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다. 그 길은 자기 반성과 금욕의 종교이다. 나는 자아-초월과 자아-통제라는 새로운 메세지를 가지고 왔다.

“진실로 진실로 말한다. 자아를 정복하는 자는 한 도시를 점령하는 자보다 크다. 자아-정복은 사람의 도덕적 성품을 재는 척도요, 영적 성장의 정도를 가리키는 지표이다. 옛 체제 밑에서 너희는 금식하고 기도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옛 것은 사라져야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해방된 신분을 얻고 죽음을 벗어난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을 세상에 주어야 한다.

“옛 가르침은 참고 복종하며, 생활 규칙에 순응해야 한다. 새 가르침은 먼저 진리의 영으로 변화되고, 지성을 항상 영적으로 새롭게 하여 혼을 강하게 하면, 하나님의 인자하고 적절한 완전한 뜻을 기쁘게 행하는 힘을 부여받게 된다. 너희는 육체에 매인 노예가 아니라 자유롭고 해방된 영의 아들이다. 옛 율법은 자아를 구속하고 두려움과 금욕에 노예가 되게 하지만, 영의 새 율법은 자아-정복의 자유를 너희에게 부여한다.

“나쁜 일을 했을 때, 악한 자의 탓으로 돌리려 하나 실제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라 잘못된 길로 빠진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인간의 지성은 스스로 속고, 어리석은 두려움, 약간의 탐욕, 비굴한 쾌락, 악의, 질투, 복수하려는 증오심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가!' 고 말하지 않았느냐?

143:2.6 “영에게서 태어난 아버지의 자녀들은 언제나 자아와 자아-욕구를 정복한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완전을 추구하고, 스스로 정신과 육체의 모든 악을 없애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특권이다.

“너희의 아들 신분은 믿음에 바탕을 두며,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사람들을 참되고 진정한 뉘우침으로 인도할 것이다. 구원하는 이 믿음조차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제 너희는 자아의 노예가 아니라 오히려 자아를 다스리는 승리한 주인이요, 하나님의 해방된 아들이다.

“너희가 영에서 태어났다면, 금욕하고 육체의 매인 처지에서 벗어나 언제까지나 구원받으며, 즐거운 영의 나라로 옮겨지게 된다. 너희는 날마다 생활에서 영의 열매를 저절로 맺게 된다. 영의 열매는 땅에서 필사자의 참된 자아-정복의 높이까지 이르는, 가장 높은 종류인 자아-정복의 본질이다.”

▲Top

 

 

3. 오락과 휴식

143:3.1 이 무렵 요한의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골칫거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방인과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는 것도 유대인들에게 큰 시련이었다. 안드레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문제와 복잡한 일을 가지고 주에게 갔다. 예수는 : “안드레, 그렇게 많은 사람이 격한 감정을 가지고 관여할 때, 말로 그 곤경에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없다. 사흘 동안 긴장을 풀면서 쉬기를 바란다.

“열한 형제 각자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하라. '주가 한동안 우리하고만 함께 가서 쉬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 시달리고 긴장하였으니, 우리가 겪은 시련과 곤경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협조할 수 있겠는가?' 하며, 형제 각자에게 사사롭게 접근하라." 안드레는 지시받은 대로 하였다.

이것은 각자의 체험 중에서 놀라운 기회였고 그들은 산에 올라갔던 그날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 여행 동안 내내, 그들의 골칫거리에 대하여 거의 한 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산 꼭대기에 다다르자 예수는 둘레에 그들을 앉히면서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모두 휴식의 가치와 긴장 풀기의 효능을 배워야 한다. 뒤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를 내버려두는 것이다. 쉬는 동안 문제의 크기와 비중이 줄어든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튿날 예수는 열두 사도 각자에게 토론할 주제를 나누어 주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그들의 종교적 일과 관계 없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그날 전부를 썼다. 한낮의 점심으로 빵을 먹을 때, 예수가 감사를―입으로―드리는 것조차 소홀히 했을 때, 그들은 한 순간 충격을 받았다. 이때에 주가 그런 형식을 소홀히 함을 처음 보았다.

산으로 올라갔을 때, 안드레의 머리는 문제들로 꽉 차 있었다. 요한은 지나친 혼란에 빠져 있었고, 야고보의 슬픔에 잠겨 있었다. 마태는 부족한 기금으로 가슴을 태우고 있었으며, 베드로는 과로했고 변덕이 더 심해졌다. 유다는 과민과 이기심에 시달렸고, 시몬은 애국심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빌립은 갈수록 어리둥절하였다. 나다니엘은 유머가 줄어들었고, 토마스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오직 쌍둥이가 정상이었고 흔들리지 않았다.

143:3.6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급박한 문제들은 과장된 두려움의 산물이요 불안이 확대되어 생겨난 것이라는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들은 훌쩍 떠남으로 그런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도록 버려두었다.

사흘 동안 휴가를 보낸 결과로, 모든 사람의 정신 상태가 달라지고 신경 과민에서 해방된 것을 바라보았을 때, 열두 사도 중 다수가 정말로 기뻐하였다.

두 그리스 풍의 도시,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많지 않은 이방인이 복음을 믿었지만, 처음으로 열두 사도는 값진 체험을 얻었다. 그들은 야곱의 우물 가까이 시카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Top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143:4.1 6백 년이 넘도록 유대 지방의 유대인, 갈릴리의 유대인도 사마리아인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 기원전 7백 년 무렵에, 아씨리아의 임금 사르곤은 팔레스타인 중부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유대인을 2만 5천 명이 넘게 포로로 데려갔다. 그 자리에 거의 같은 이민족을 정착하게 하였다.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이 끝나고 유대인이 돌아올 때,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방해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은 나중에 알렉산더의 군대를 친절히 도와줌으로 유대인들의 기분을 건드렸다. 이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들이 게리짐 산에 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열두 사도는 사마리아로 들어가자고 예수가 말했을 때 그것은 주에게 바치는 충성심을 재는 어려운 시험을 맞이했다. 그러나 한 해 남짓 예수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그들은 일종의 개인적 충성심을 길렀고, 이것은 그의 가르침을 믿는 그들의 믿음과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도 뛰어넘은 것이었다.

▲Top

 

 

5. 시카의 여인

143:5.1 주와 열두 사도가 야곱의 우물에 다다랐을 때, 사도들은 먹을 것과 텐트를 준비하러 갔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은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을 터이지만, 예수는 형제들과 함께 가라고 이들에게 부탁하며 말했다. "조금도 내 걱정을 하지 말라. 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우리를 해치려 할 것이다.

예수는 목이 말랐지만 우물에서 물을 길을 방도가 없었다. 시카의 한 여인이 물을 길으려고 준비했을 때 예수는 말했다. “내게 물 좀 다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의 모습과 옷차림, 말씨를 보고 갈릴리 유대인이라 짐작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날다 였다. 날다는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마실 물을 달라 하십니까?” 예수는 대답했다: “내가 마실 물을 너에게 달라 하였지만, 네가 이해할 수만 있다면 생명의 물을 나에게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자 날다가 말했다: “하지만 주여, 이 우물은 깊고, 당신은 물을 길을 그릇도 없는데, 어디에서 이 생명의 물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당신은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가요?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자기와 아들들과 가축도 그 물을 마셨습니다."

예수는 대답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이 다시 마르려니와 살아 있는 영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날다가 말했다. “내게 그 물을 주사 목도 마르지 않고 물 길러 여기 멀리 오지도 않게 해 주세요.”

날다는 예수가 자기에게 일종의 추파를 던지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 그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예수는 명령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자여, 가서 네 남편을 찾아 여기로 데려오라.” 이 명령에 날다는 주의 친절함을 그릇 판단했음을 깨달았고 그의 말투를 오해한 것을 알아차렸다. 비로소 깨닫고 더듬으며 말했다. “그러나 주여 내게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네가 진실을 말하였구나, 네가 한때는 남편이 있었을 수 있으나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네 남편이 아니다. 내 말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고 내가 오늘 너에게 내민 생명의 물을 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때가 되어서 날다는 영이 맑아졌고 제 정신이 들었다. 그 여자는 전적으로 부도덕한 여자는 아니었다. 남편에게 모질고 부당하게 버림받았고, 막다른 상황에서 어떤 그리스인과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날다는주를 향하여 말했다: “내 주여, 당신께 버릇없이 말씀드린 것을 뉘우칩니다. 당신은 거룩한 사람이거나 선지자일 것입니다.” 게리짐 산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의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고, 당신은 예루살렘이 예배해야 할 곳이라고 말씀할 터인데, 어느 쪽이 하나님을 예배할 바른 장소입니까?”

143:5.6 예수는 날다의 가슴 속에 생명의 물을 바라는 참된 목마름이 있음을 알았다. 예수는 : “여인아, 이 산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를 예배하지 않을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너희가 드리는 예배는 여러 이교도 신들의 종교와 이방의 철학이 섞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한 분의 하나님, 야웨께 예배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예배하는 사람이 진실로 아버지를 예배할 때가 곧 올 것이다―바로 지금이 그런 때라―고 말할 때 나를 믿어야한다. 이는 아버지가 바로 그러한 예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다는: “예 주여, 요한은 구원자가 오신다고 설교했는데, 그가 모든 것을 선언할 줄을 내가 압니다.” 예수는 날다의 말을 막으며,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여인아, 말하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이것은 예수가 처음으로 감추지 않고 신의 본성을 지닌 아들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 여자에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순간까지 남자들 눈에 의심스러운 성격을 가진 여자에게 선언하였다. 신의 눈은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한 인간 혼을 보았을 뿐이다.

열두 사도가 시카에서 돌아왔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랐고, 아무도 감히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한편 예수는 : “여인아, 길을 가라. 하나님이 너를 용서하였고, 새 인생을 살 것이다. 생명의 물을 받았으니, 새 기쁨이 솟아나겠고 최고자의 딸이 될 것이다.”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리고 도시로 달아났다.

그녀가 도시로 들어서자 만난 모든 사람에게 외쳤다: “야곱의 우물로 빨리 가세요. 내가 한 모든 것을 말한 사람을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이 교화자가 아닐까요?” 해 지기 전에, 큰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야곱의 우물로 모였다. 그리고 주는 생명의 물, 깃드는 영이 주는 선물에 대하여 그들에게 더 말씀했다.

143:5.11 사도들은 예수가 부도덕한 여자와도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여자, 아니 아무리 부도덕한 여자라도 하나님의 딸이요, 영생을 받을 후보자가 된다는 것을 예수는 사도들에게 가르치기 무척 어려웠다. 19세기가 지난 뒤에도 많은 사람이 주의 가르침을 깨닫기를 꺼려하는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기독교조차 그리스도의 일생의 진리가 아니라 그가 죽은 사실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쌓아 올렸다. 세상은 예수의 비극적이고 슬픈 죽음보다 행복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그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날다는 이튿날 이 이야기를 전부 사도 요한에게 말했지만,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 다 밝히지 않았다.

날다는 예수가 “내가 일찍이 행한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말해주었다고 요한에게 말했다. 여러 번 요한은 날다와 이렇게 이야기하신 것에 관하여 예수께 묻고 싶었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예수는 그 여자에게 다섯 남편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에 다른 네 남자와 살았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머리 속에 아주 선하게 살아났고, 그래서 예수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말했다고 계속하여 요한에게 말했다.

▲Top

 

6. 사마리아의 부흥

143:6.1 날다가 시카에서 예수를 보라고 군중을 이끌어낸 날 저녁에, 열두 사도는 먹을 것을 가지고 막 돌아왔다. 안드레가 예수에게 먹을 것을 권하자, 예수는 말했다: "내가 먹을 고기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고 그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사마리아의 한 도시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추수할 때가 되었다.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곳에서 거두라고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낸다. 남들이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하던 일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전도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시카에서 많은 주민이 복음을 믿고 세례받기를 청했지만 예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어떤 종교에서도 가치가 한 쪽으로 치우치고, 신학에서 진리 대신 사실이 차지하도록 버려두기가 너무나 쉽다. 십자가의 사실은 후일에 기독교의 바로 그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의 핵심 진리가 아니다.

게리짐 산에서 예수가 가르친 말씀의 주제는, 예수가 형제요 친구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이자 친구로 삼는 것이었다. 사랑은 세상에서―우주에서―가장 큰 관계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예수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을 안전하게 선언할 수 있었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하려고 사마리아의 심장부로 또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143:6.6 예수와 열두 사도는 8월말까지, 낮에는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나라 복된 소식을 전하고 밤에는 게리짐 산에서 야영했다. 사마리아의 이 여러 도시에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많은 사람을 얻었고, 후일에 빌립이 일하도록 예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Top

 

 

7. 기도와 예배에 관한 가르침

143:7.1 게리짐 산에서 저녁 회의가 있을 때, 예수는 큰 진리를 많이 가르쳤고 특히 다음을 강조했다:

참된 종교는 창조자와의 관계를 스스로 의식하는 개인 혼의 행위이다. 조직된 종교는 개별 신자의 예배를 사회화 하려는 인간의 시도이다.

예배는―영적인 것을 숙고하는 것―봉사, 즉 물질적 현실인 일하고 노는 것을 번갈아 해야 하며,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얻어야 한다. 리듬 있는 시로 심오한 철학을 완화해야 한다. 삶의 긴장, 성격의 긴장은 편안한 예배로 완화되어야 한다. 우주에서 인격이 고립되는 두려움에서 오는 불안감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묵상과, 최상위를 깨달으려는 시도로 해소되어야 한다.

기도는 생각을 덜하고 깨달음을 더 얻게 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지식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넓히도록 설계되었다.

예배는 앞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이 새로운 영적 중요성을 현재의 삶에 다시 반영하도록 의도되었다. 기도는 영적으로 유지되지만 예배는 신성하게 창조된다.

143:7.6 예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의 영감을 얻기 위해 하나인 분을 바라 보는 기술이다. 예배는 혼이 물질 우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재고, 또한 혼이 영적 실체들에 얼마나 안전하게 붙어있는지 재는 척도이다.

기도는 자아를 생각하게 한다. 예배는 자아를 잊는 초월 사고이다. 예배는 진실하고 이상적인 영혼의 휴식, 편안한 영적 노력의 한 형태이다.

예배는 전체와 자신을 식별하는 부분적 행동이다. 예배는 아들이 신다운 아버지와 몸소 친교하는 행위이며, 인간의 혼과 영이 신선하고 창조적인 태도, 친근하고 열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사도들은 야영지에서 그의 가르침 중에 아주 조금만 깨달았지만, 다른 세상과 세대들은 그 가르침을 깨달을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