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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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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차 개정 합본 - 용어 통합


 

제 122 편
예수의 탄생과 아기 시절


. 중도자 위원회
. 1934년



122:0.1 미가엘이 수여할 나라로서 팔레스타인이 선택된 이유,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이 선택된 이유는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멜기세덱들의 특별 보고서를 연구한 뒤에, 미가엘은 가브리엘과 의논후 마침내 유란시아를 선택하였다. 이 결정 후에 가브리엘은 친히 유란시아를 찾아보았으며, 영적ㆍ지적 특징, 종족과 지리적 특징을 조사한 결과, 히브리인이 비교적 장점을 가졌기 때문에 타당하다고 결정을 내렸다. 미가엘의 인가를 받은 뒤에, 12자 가족 위원회가 임명되었고 유란시아로 파견되었다. 이 위원회가 일을 종료할 때 가브리엘은 유란시아에 있었고, 미가엘의 수여 가족으로서, 장차 결혼할 세 쌍의 사람들을 지명하는 보고를 받았다.

이들이 지명한 세 쌍 중에서 가브리엘은 요셉과 마리아를 선택하였고, 그 뒤에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여되는 아이에게 땅에서 어머니가 되도록 선택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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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셉과 마리아

122:1.1 예수(요수아 벤 요셉)의 인간 아버지 요셉은 특출한 히브리인이었지만 모계 쪽으로 비유대 종족 혈통이 많았다. 아브라함, 옛날 청인(靑人), 안돈과 폰타에까지 이어졌다. 다윗과 솔로몬, 아담은 요셉의 직계 조상에 속하지 않았다. 요셉의 직계 조상들은 기계공이었다. 그의 가족은 고귀한 서민의 혈통, 길게 이어진 뛰어난 혈통에 속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유능한 선조들의 후손이었다. 아논ㆍ타말ㆍ룻ㆍ밧세바ㆍ안지ㆍ클로아ㆍ이브ㆍ엔타ㆍ라타와 같이 이름난 여자 선조들이 있었다. 어느 유대 여인도 마리아보다 더 뛰어난 혈통을 가지지 않았다. 마리아 족보의 특징은 요셉의 족보와 마찬가지로, 굳세지만 보통 사람이 주류를 이루었다. 교양과 신앙 면에서 마리아는 유대인이었지만, 유전 자질로 보면 오히려 시리아ㆍ힛ㆍ페니키아ㆍ그리스ㆍ에집트인 혈통이 혼합되었고, 마리아의 종족은 요셉보다 더 평범하였다.

미가엘의 수여가 계획될 무렵, 요셉과 마리아는 가장 이상적 조합이었고, 평균보다 높은 성격 자질을 가졌다. 미가엘의 계획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땅에서 보통 사람으로 나타나는 것이었고, 따라서 가브리엘은 바로 요셉과 마리아와 같은 사람들을 수여자의 부모로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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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나타나다

122:2.1 유란시아에서 예수의 생애는 실제로 세례 요한이 시작했다.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유대인 사제 계급이었고, 어머니 엘리자벳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척이었다. 사가랴와 엘리자벳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아이가 없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기원전 8년 6월 말에 나타났다. 가브리엘은 말했다:

“네 남편 사가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제단 앞에 서서 한 구원자가 오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나 가브리엘은 이 신성한 선생의 선구자가 될 아들을 네가 곧 낳으리라는 것을 알리러 왔으니, 아들을 요한이라 부를 것이다. 이는 그가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이요, 또한 너희 민족의 혼을 치유하는 자, 온 인류의 영을 해방하는 자가 오심을 선포할 것이다. 너의 친척 마리아는 약속된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내가 또한 그 여인에게 나타날 것이다.”

가브리엘이 떠난 뒤에, 엘리자벳은 이 체험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다음 해 2월 초순에 마리아가 방문할 때까지, 남편 외에 그 계시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다섯 달 동안 엘리자벳은 비밀을 남편에게도 감추었다. 가브리엘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자, 사가랴는 대단히 의심하였다. 자신이 고령이었을지라도, 아내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요한이 태어나기 6주 전쯤,
꿈을 꾼 결과로 엘리자벳이 메시아를 위하여 길을 예비할 자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122:2.6 가브리엘은 기원전 8년 11월 중순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마리아는 의심하지 않고 가브리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하기 원했다. 마리아는 먼 사촌 집에서 함께 3주 동안 머물렀다. 가브리엘을 본 환상을 마리아가 굳게 믿게 하려고 엘리자벳은 많이 애썼다.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와 운명의 아이를 돌보는 직분에 더 충만히 헌신하게 되었고, 마리아는 곧 무력한 아기, 이 땅에서 보통이며 정상인 아기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요한은 기원전 7년 3월 25일, 유다 시에서 태어났다. 미리 지시받은 대로 그를 요한이라고 정식으로 이름 지었다. 사가랴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해주었다.

요한의 부모는 요한의 어린시절부터 요한이 영적 지도자인 종교 선생이 될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요한은 어릴 때에도 아버지가 일하는 성전에서 자주 갔고, 그가 본 모든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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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림

122:3.1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말했다. “네 안에 잉태된 자를 하늘에서 예정하셨고, 너는 그를 요수아라 부를 것이니, 그가 하늘나라 시대를 열 것이다. 요셉과 너의 친척 엘리자벳을 제외하고 이 일을 말하지 말라. 마리아, 나의 축복이 너에게 머무르고, 최고자들의 권능이 너를 굳세게 하겠으며, 온 땅의 주(Lord)가 너를 덮을 것이다.”

마리아는 남편에게 말하기 전에 여러 주 동안 마음 속에서 이 방문을 몰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 요셉은 가브리엘이 찾아온 것에 대하여 의심이 들었다. 몇 주 동안 생각한 뒤에, 그와 마리아는 자신들이 메시아의 부모가 되도록 선택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중대한 결론에 이르고 나서, 마리아는 엘리자벳과 이야기하려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마리아는 자기 부모, 요아킴과 한나를 찾아보러 갔다. 마리아의 부모, 두 남동생, 두 여동생은 예수가 가진 신성한 임무에 대해 대단히 회의를 품었다. 그들은 가브리엘의 방문을 알지 못했다.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위대한 선생이 될 운명을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여동생 살로메에게 털어놓았다.

예수를 잉태한 다음 날에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선언하였고, 가브리엘의 방문은 약속의 아이가 태어나는 것에 대한 유일한 초자연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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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셉의 꿈

122:4.1 한 눈부신 하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말했다. “요셉, 지금 높은 곳에서 다스리는 이의 명령을 받고서 내가 나타났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은 세상에서 위대한 빛이 될 아들임을 알린다. 그의 생명은 인류의 빛이 될 것이다." 이 체험 이후 요셉은 마리아의 이야기를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어떤 방문에서도, 다윗의 집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예수가 “유대인의 구원자,” 고대하던 메시아가 되리라는 어떤 암시도 없었다. 예수는 유대인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었지만, 세상의 구원자였다. 그의 사명은 어느 한 집단이 아니라, 모든 종족과 민족을 위한 사명이었다.

요셉은 다윗 왕의 직계 혈통이 아니었다. 마리아가 요셉보다 더 많이 다윗의 혈통을 가졌다. 요셉 아버지 쪽의 조상이 고아가 되어서, 다윗의 직계 후손인 어떤 사독이라는 사람의 집에 입양되었기 때문에 요셉은 “다윗의 집” 출신으로 간주되었다.

몇 세기 동안, 히브리 선지자들은 한 구원자가 올 것이라 예언해 왔다. 히브리 성서에서 두루 발견되는 많은 상징적 구절이 후일에 예수 일생의 사명에 잘못 적용되었고 왜곡되었다. 예수는 다윗의 왕가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대중 앞에서 한때 부인하였다. “한 젊은 여인이 아들을 낳으리라”는 구절조차 “한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요셉과 마리아의 족보들은 미가엘이 땅에서 일생을 보낸 이후에 만들어졌다. 이 계보 가운데 다수는 주의 선조들 가운데 많은 것을 포함하지만, 대체로 이것들을 사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은 옛날 예언의 말씀이 모두 그들의 주, 선생의 일생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려는 유혹에 너무나 자주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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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의 지상 부모

122:5.1 요셉은 태도가 부드러운 사람이요, 양심적이고, 모든 면에서 자기 민족의 종교 관습과 관례를 충실히 지켰다. 그는 말이 적었어도 많이 생각하였다. 유대 민족의 딱한 곤경은 요셉에게 많은 슬픔을 주었다.

마리아의 기질은 남편과 아주 반대였다. 보통 명랑했고, 풀이 죽는 일이 아주 드물었으며, 요셉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늘 밝았다. 이상하고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맏아들 예수, 그의 형제 자매들과 가진 관계에서 마리아는 차분하고 용감하며 썩 지혜로웠다.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이해심을, 어머니로부터 의분을 느끼는 능력을 물려받았다. 생활 환경에 대하여 어른으로서 예수의 감정적 반응을 보면 한때는 아버지처럼 명상에 잠기고 경건하며, 때때로 슬퍼 보이는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낙관적이고 결단력 있는 어머니의 성향을 따라서 앞으로 돌진하는 일이 더 흔했다. 어른이 되면서, 마리아의 기질이 예수의 생애를 지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요셉으로부터 예수는 유대인의 의식 풍습에 대하여 엄격한 훈련을 받고 히브리 성서에 관하여 특별한 식견을 확보했다. 마리아로부터 그는 종교 생활의 폭 넓은 관점과 개인의 영적 자유에 관하여 더 개방적인 개념을 얻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 시절과 신분으로 보면 평균보다 잘 교육받은 편이었다. 요셉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계획하는 사람이었고, 민첩하게 적응하고, 실제적으로 즉시 실행했다. 요셉은 까만 눈에 갈색 머리였고, 마리아는 갈색 눈에 거의 금발이었다.

122:5.6 마리아는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다른 자녀들과 친구와 친척들의 견해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가 잉태된 바로 뒤에 가브리엘이 자기에게 나타났던 기억 때문에, 마리아의 마지막 태도는 언제나 차분해졌다.

마리아는 직물 짜는 솜씨가 좋았고, 살림을 잘하였으며, 우수한 가정 주부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다 유능한 선생이었고, 아이들이 그 시절의 공부를 반드시 정통하도록 도왔다.

요셉이 젊은이였을 때 마리아의 아버지에게 고용되었고, 점심 식사 중에 마리아가 요셉에게 물 한 잔을 가져왔을 때 두 사람의 구애가 정말로 시작되었다.

요셉이 스물 한 살이 되었을 때, 나사렛 근방 마리아의 집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서 결혼했다. 그들은 요셉의 형제들의 도움을 얻어 지은 나사렛에 있는 새 집으로 옮겼다. 이 집은 높은 언덕 아래, 둘레의 시골이 내려다보였다.이 젊은 부모는 특별히 마련된 이 집에 약속된 아이를 환영하려고 했지만, 이 집을 떠나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요셉의 집안에서 반 이상이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마리아의 집안 사람들 중에는 주가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의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메시아가 현세의 구원자요 정치적 통치자라는 관념을 고수했다.

122:5.11 요셉은 유대 종교의 동양적 관점, 즉 바빌로니아의 관점을 강하게 고수했다; 마리아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해석인, 서양 또는 헬레니즘 경향으로 강하게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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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사렛에 있던 집

122:6.1 예수의 집은 나사렛 북부에 있는 높은 언덕, 그 도시의 교외에서 살았고, 이것은 자주 산보를 즐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은 동쪽으로 타볼 산맥, 나인 산을 빼고, 갈릴리 남쪽의 모든 산 가운데 가장 높았다. 예수가 가장 좋아하는 산책은 동북 방향으로 산밑 둘레를 구불구불 돌아가는 좁은 산길을 따라서, 세포리스로 가는 길과 만나는 곳까지 가는 것이었다.

요셉과 마리아의 집은 돌로 지은 한 칸 방이고 지붕이 평평했다. 가구는 낮은 돌 식탁 하나, 토기와 돌 접시와 돌 단지들, 베틀 하나, 등받침 하나, 조그만 의자 몇 개, 돌 마루에서 자는 데 쓰는 깔개들이었다. 뒤뜰 동물 우리 가까이에, 아궁이가 있고, 곡식 빻는 맷돌을 덮는 오두막이 있었다. 예수는 어머니가 맷돌을 돌려 가는 동안 알곡을 집어 넣곤 했다.

후일에 식구가 늘면서, 그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 크게 만든 돌 식탁 둘레에 모두 쪼그리고 앉아, 공동으로 쓰는 접시, 그릇으로 자신이 음식을 덜어먹곤 했다. 겨울에는 저녁 식사 때, 진흙으로 만든 작고 납작한 등불이 식탁을 비추었고, 등불은 올리브기름으로 채웠다. 마르다가 태어난 후에, 큰 방 하나를 덧붙여지었다. 낮에는 목수 작업장으로 쓰이고, 밤에는 침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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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베들레헴 여행

122:7.1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달(기원전 8년 3월)에 케자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인구를 세어야 한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 칙령에 따라 이 인구 조사는 기원전 8년에 기록되었고, 팔레스타인에서는 1년 연기되어, 기원전 7년에 실시되었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갈 필요는 없었지만, 마리아는 모험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따라가겠다고 고집하였다. 혼자 있는 동안에 아이를 낳을까 두려기도 했고, 친척 엘리자벳과의 만남도 기대하였다.

요셉은 마리아가 따라오는 것을 실질적으로 막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떠나기 전에, 요셉은 마리아가 따라가는 것을 좋게 여겼고, 날이 밝자 그들은 즐겁게 나사렛을 떠났다.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했다. 짐 싣는 짐승이 하나만 있었서, 배가 부른 마리아가 식량을 실은 동물에 올라탔고, 요셉은 그 짐승을 이끌면서 걸었다. 요셉의 아버지가 최근에 아파서 부모 부양에 돈을 내야 했기 때문에, 집을 짓고 가구를 장만하는 일이 요셉에게 몹시 힘에 겨웠다. 이 유대인 부부는 기원전 7년 8월 18일에 아침 일찍 베들레헴으로 여행 길을 떠났다.

여행의 첫날 그들은 길보아산 기슭에 이르렀고, 요단강 가에 그날 밤 텐트를 치고서 어떤 종류의 아들이 태어날 것인지 서로 추측해 보았다. 요셉은 아들이 영적 선생이 될 것이라 집착했고, 마리아는 유대인의 메시아, 히브리 국가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 고수하였다.

122:7.6 8월 19일 밤 예리고에 다다랐으며 어느 여인숙에서 멈추었다. 8월 20일 아침 일찍 다시 길을 떠났고 한낮이 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다다랐다. 오후 중반에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여인숙에 사람들이 붐비어, 요셉은 먼 친척들한테서 잠잘 곳을 찾았지만, 베들레헴에 있는 방마다 넘치도록 사람들이 가득하였다. 그 여인숙 바로 밑에 카라반 손님을 위한 마구간이 짐승들을 치우고 숙박하는 손님을 받기 위하여 깨끗이 치워졌다는 통지를 받았다. 천막 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들은 그렇게 편안한 잠자리를 가지게 되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요셉은 당장 나가서 등록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마리아는 지쳐 있었다. 마리아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했고, 그에게 옆에 남아 있으라고 부탁했으며, 요셉은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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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예수가 태어나다

122:8.1 기원전 7년 8월 21일 한낮에, 동료 여인 여행자들의 도움과 친절한 보살핌을 받아서 마리아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나사렛 예수는 세상에 태어났고, 그러한 가능성에 대비하여 마리아가 가져왔던 옷 속에 둘둘 싸여서, 가까이 있는 말구유에 눕혀졌다.

모든 아기가 세상에 온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약속된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여드렛날에,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서, 그는 할례를 받았고, 정식으로 요수아(예수)라는 이름을 받았다.


예수가 태어난 다음 날, 요셉은 등록을 마쳤다. 이틀 전 밤, 예리고에서 만났던 한 사람을 통해 숙소를 바꿀 수 있었고, 그 여인숙으로 옮겼다. 요셉의 어느 먼 친척 집에서 묵을 곳을 찾을 때까지 거기서 거의 3주 동안 살았다.

마리아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엘리자벳에게 보냈고,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요셉을 초대한다는 회답을 받았다. 사가랴와 엘리자벳은 예수가 정말로 유대인의 구원자 메시아가 되고, 아들 요한이 그 부관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는 진지한 확신에 홀려 있었다. 마리아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후계자가 되도록,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 남아 있으라고 요셉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오에 예수가 태어날 때, 유란시아의 세라핌들은 베들레헴의 말구유를 내려다보며 영광의 찬송을 불렀다. 이 찬미 소리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우르에서 온 어떤 사제들, 사가랴가 예루살렘에서 보낸 사제들이 도착한 날까지 어떤 목동이나 필사 인간도 베들레헴의 아기에게 경의를 표하러 오지 않았다.

122:8.6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이 사제들은 어느 종교 선생으로부터 "생명의 빛" 이 한 아기로서 태어나려 한다는 말씀을 꿈 속에서 받았기 때문에, 예루살렘까지 왔다가 사가랴를 만났다. 아기 예수가 거의 3주가 되었을 때, 이들이 찾아 왔고 선물을 전했다.

이 현자들은 아무 별도 보지 못했다. 예수는 기원전 7년 8월 21일 정오에 태어났다. 기원전 7년 5월 27, 물고기 별자리에서 목성과 토성의 합이 일어났다. 같은 해, 9월 29일, 12월 5일에 합이 또 일어난 것은 천문학에서 드문 사건이다. 열심 있는 사람들이, 점성가들이 말 구유까지 안내받고 갓난아이에게 경배했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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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성전에서 아기를 보이다

122:9.1 첫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는 대신에, 모세는 다섯 세겔을 성전에 바치면 아들이 살아도 좋다고 유대인에게 가르쳤다. 또한 어머니가 정화를 받기 위해 성전에 희생물을 바쳐야 한다는 모세의 규례가 있었다. 이 두 의식을 한꺼번에 치르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었다. 따라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보이고 몸값을 치렀고, 마리아의 정화 의식을 위해 희생물을 바치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다.

성전 마당에 가수 시므온과 여자 시인 안나가 항상 서성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늘 같이 다녔고 사가랴 사제와 가까웠는데, 사가랴가 요한과 예수의 비밀을 이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시므온과 안나는 사가랴를 신뢰했기 때문에 예수가 유대 민족이 기대하는 구원자라고 믿게 되었다.

성전에 예식을 치르려고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나타날 때, 사가랴는 누가 예수인지를 가르쳐 주기로 사전에 약속해 놓았다.

122:9.4 이 경사를 위하여 안나는 전에 시를 써 두었고, 시므온이 그 시를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요셉과 마리아와 성전 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다. 다음이 첫아들을 대속하는 그들의 찬송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를 찬송하리라,
주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셨도다;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세웠도다
그의 종 다윗의 집에서
그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 같이―
우리의 적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이라.
우리 선조들에게 자비를 보이고, 그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여 주시며―
그가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서약으로,
우리가 적들의 손에서 풀려난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으니,
두려움 없이 그를 섬겨야 하노라,
우리의 모든 날이 있기 전에 주님은 거룩하고 의로우시도다.
옳다, 너 약속의 아이는 최고자의 선지자라 불릴 것이다;
너희는 주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주의 면전으로 나아가야 하리니;
그의 백성에게 구원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하여
그들의 죄 사함 속에서
우리 하나님의 다정한 자비로우심을 기뻐하라.
높은 곳에서 오는 날들이 이제 우리를 찾아왔으니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에 앉아 있는 자들 위에 빛이 비추리라;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신다.
아 주여, 이제 주의 종이 당신의 말씀을 좇아서 평안히 떠나게 하소서,
나의 눈이 주가 행한 구원을 보았으니,
주께서 모든 백성이 보는 데서 미리 준비하신 것이라;
이방인의 베일도 벗기는 빛이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여.

122:9.28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길에, 요셉과 마리아는 말이 없었다―당황하고 경외감에 넘쳤다. 늙은 여자 시인 안나의 작별 인사 때문에 마리아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고, 예수를 유대 민족이 기대하는 메시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때 이른 이 노력이 요셉은 달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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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헤롯의 행동

122:10.1 헤롯이 보낸 감시원들은 우르에서 온 사제들이 베들레헴을 찾아갔다고 보고했다. 헤롯은 갈대아인 현자들을 호출했다. 자기도 가서 경배하도록, 현자들에게 돈 자루를 주면서 그 아기를 찾아내라고 지시했으나, 현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탐꾼들이 시므온이 불렀던 노래 사본 일부를 가져왔으나, 이들이 나사렛 부부가 어디로 갔는지 몰라서 헤롯은 화가 났다. 헤롯은 요셉과 마리아를 찾으라고 탐색대를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사가랴와 엘리자벳은 베들레헴에서 멀리 갔고, 아기 예수는 요셉의 친척들에게 몰래 옮겨졌다.

요셉은 일거리를 찾기가 두려웠고, 얼마 안 되는 저축은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성전에서 정화 예식이 있을 때에도, 마리아를 위해서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칠 만큼, 요셉은 자신을 가난하게 여겼다.

1년이 넘게 수색한 결과 소득이 없게 되자, 헤롯은 베들레헴에서 2살이 안된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베들레헴에 남자 아기 16명이 이슬로 사라졌다. 술수와 살인은 헤롯의 궁정에 있는 자신의 직계 가족 안에서 보통 있는 일이었다.

이 아기들의 학살은 기원전 6년 10월 중순경이었고, 그때 예수는 한 살이 조금 넘었다. 헤롯의 궁정 수행원들 중에 한 사람이 아기들을 도륙하라는 헤롯의 명령을 사가랴에게 알렸고, 사가랴가 마련해 준 돈으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데리고 학살이 있기 전날 밤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향하여 떠났다. 요셉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목수 일을 하였고, 마리아와 예수는 요셉 쪽의 부유한 친척들의 집에서 묵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만 2년이 차도록 머무르고 헤롯이 죽기까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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