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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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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차 개정 합본 - 용어 통합


제 123 편 
예수의 어린 시절 초기



. 중도자 위원회
. 1935년


123:0.1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기까지,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을 떼지 않았고, 거기서 이 가족은 친척들과 함께 살면서 정상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요셉은 몇 달 동안 목수로서 고용되었고, 공공건물 공사에, 노동자들의 우두머리 자리로 승진되었다.

예수가 무력한 아기였던 이 처음 몇 해 동안 마리아는 무슨 일이 닥칠까 두려워 늘 아이를 지키고 있었다. 가까운 이웃에 예수와 나이가 비슷한 놀이 친구 여섯 명이 있었지만, 마리아는 두려움으로 예수를 늘 곁에 두었다. 예수가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어떻게 적응하는가 배울 유익한 체험을 얻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요셉은 마리아를 설득했다. 마리아는 작은 꼬마들이 놀고 있는 동안에도 언제나 경계하는 것을 일로 삼았다.

알렉산드리아에서 2년 머무르는 동안 예수는 튼튼하고 정상으로 자랐다. 예수가 “약속의 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대체로 몰랐고, 요셉은 친척 중 멤피스에 사는 아득한 이크나톤의 후손인 몇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밝혔다. 요셉의 가족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기 얼마 전에 그 친구들의 모임에서 히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번역판을 예수에게 선물했다. 이 지지자들은 운명의 아이가 팔레스타인 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권유는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받은 뒤에 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는 것을 얼마 동안 늦추었다.

마침내 요셉과 마리아는 그들의 친구 에즈레욘의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기원전 4년 8월말에 욥바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바로 베들레헴으로 갔고, 나사렛으로 가는 문제를 놓고 친구와 친척들과 의논하느라 9월 한 달을 베들레헴에서 보냈다.

마리아는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요셉은 아들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구원자가 될 것이라 믿지 않았으며, 자신이 다윗의 후손이 아니고 입양된 것을 알고 있었다. 요셉은 아이의 안전을 두려워했고, 더구나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도 베들레헴 보다는 갈릴리가 더 적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반대하는 마리아를 극복하는데 3주가 걸렸다.

123:0.6 요셉의 가족은 기원전 4년 10월초에 베들레헴을 떠나 나사렛을 향했다. 마리아와 아이는 새로 산 짐 싣는 짐승에 올라탔으며, 요셉과 요셉 가족의 안전을 위해 동행한 남자 다섯 명은 걸어갔다. 친척들은 요셉의 가족만 나사렛까지 여행하라고 버려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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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123:1.1 길 떠난 지 나흘째에 요셉의 가족은 나사렛 집에 도착했다. 아주 조용히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은 그들이 알렉산드리아를 떠난 것조차 몰랐다. 마리아는 예수가 태어난 뒤에 처음으로 자기 집에 정착했다. 한 주도 채 되기 전에 요셉은 목수 일자리를 얻었고, 그들은 행복했다.

예수는 3살 2달 정도 되었다. 여행을 잘 견디었고, 마당이 있어서 좋아 했지만, 함께 놀던 알렉산드리아의 친구들을 매우 그리워하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리 친구와 친척들에게 예수가 "약속의 아이"라는 것을 퍼뜨리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두 사람은 이 약속을 아주 충실히 지켰다.

예수가 네 살 되던 해 전체가 몸이 정상으로 자라고 특별한 정신 활동이 있는 기간이었다. 예수는 자기 또래의 야곱이란 소년과 가까워졌고, 야곱과 함께 놀 때 언제나 행복했고, 서로 훌륭한 친구요 충실한 동무가 되었다.

기원전 3년 4월 2일 이른 아침에, 둘째 아이 야고보가 태어났다. 예수는 기뻤고, 아기의 초기 활동을 보려고 서성거리곤 했다.

123:1.6 바로 이 해 한여름에, 요셉은 마을 샘물에서 가깝고 카라반이 머무르는 마당 가까운 곳에 조그만 작업장을 지었다. 예수는 자라면서 학교에 가지 않을 때, 어머니의 집안일을 돕고, 한편 카라반 안내자와 여행자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아버지가 작업장에서 일하는 것을 구경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해 7월에 예수가 만 네 살 되기 한 달 전, 카라반 여행자들과 접촉함으로 악성 장 질환이 온 나사렛에 번졌다. 마리아는 두 아이를 싸들고 동생의 시골집으로 두 달 넘게 피했 있었다. 예수는 처음으로 농가에서 사는 경험을 크게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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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섯 살 되던 해 (기원전 2년)

123:2.1 예수는 도덕적 결정을 처음으로 내릴 나이에 이르렀다. 기원전 2년 2월 11일, 마키벤타 멜기세덱과 함께 봉사한 적이 있었던 생각 조절자가 예수에게 깃들려고 왔다. 예수는 여느 아이들처럼 신성한 훈계자를 의식하지 못했고, 불멸의 혼이 영원히 살아남게 하기 위한 이 생각 조절자를 마찬가지로 받았다.

2월의 이날, 미가엘이 아이로 육신화 되는 것에 우주 통치자들의 감독하는 일이 끝났다. 예수를 지키는 책임은 조절자와 수호 천사들의 책임에 맡겨졌다. 중도자들의 사역도 때때로 보충되었다.

이 해 8월 예수는 만 다섯 살이 되었다. 한 달 전 7월 11일에 여동생 미리암이 태어났다. 이튿날 저녁에, 예수는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방법에 관하여, 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예수의 초기 교육 중 가장 귀중한 부분은, 사려 깊고 탐색적인 예수의 질문을 대답하는 부모로부터 보호되어진 것이었다. 요셉은 소년의 수많은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시간을 쓰는데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다섯 살 부터 열 살까지 예수는 계속 쏘아대는 하나의 질문 덩어리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물음에 모두 대답하지는 못했지만, 제시한 문제에 만족스러운 답을 찾기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도왔다.

나사렛으로 돌아온 뒤에 집은 분주했고, 요셉은 새 작업장을 짓고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데 전념했다. 어린아이 예수는 이 모든 자연스러운 정상 가정의 체험을 충분히 겪었다. 그는 꼬마 동생과 아기 여동생을 몹시 좋아했고, 동생들을 돌보는 일에서 마리아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123:2.5 그 시절의 이방 세계에는, 갈릴리의 유대인 가정 보다 더 나은 지적ㆍ도덕적ㆍ종교적 훈련을 줄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이들은 어린아이의 생활을 일곱 단계로 나누었다:

1. 갓난아이, 첫날부터 여드렛날까지.
2. 젖 먹는 아이.
3. 젖 뗀 아이.
4.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기간, 만 다섯 살까지.
5. 자립의 시작. 아들의 경우 아버지가 교육을 책임진다.
6. 청년기의 소년과 소녀.
7. 젊은 남녀.

123:2.13 만 다섯 살 되는 생일까지, 어머니가 아이를 훈련하는 책임을 지고, 이후로 아버지가 소년의 교육을 책임지는 것이 갈릴리 유대인의 관습이었다. 따라서 기원전 2년 8월 21일에, 유대인 교육 다섯번째 단계로, 마리아는 예수를 정식으로 요셉에게 넘겼다.

아버지는 예수의 지적ㆍ종교적 교육을 책임지지만, 어머니는 가정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어머니는 집 근처의 덩굴과 꽃을 돌보는 일을 가르쳤다. 또한 모래 놀이 틀을 여러 개 만들어 주었다. 예수는 그곳에서 지도를 그리고, 아람어ㆍ그리스어, 나중에는 히브리어 글자 쓰는 기초연습을 상당히 했다. 때가 되자 세 나라 언어로 술술 읽고, 쓰고, 말하기를 배웠다.

예수는 신체적으로 거의 완벽한 듯 했고, 정신과 감정 면에서 정상으로 진보했다. 이해 후반에 예수는 배탈이 조금 났는데, 이것은 처음으로 앓은 작은 병이었다.

123:2.16 요셉과 마리아는 가끔 맏아들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너희가 거기 있었다면, 정상적이고 튼튼한, 구김 없지만 지나치게 따져 묻는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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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섯 살 되던 해의 사건들 (기원전 1년)

123:3.1 예수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람어의 갈릴리 방언을 통달했고, 아버지는 그리스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스어 교과서는 에집트를 떠날 때 받은 성서 사본인데, 이 사본은 나사렛 전체에서 오직 두 권 중의 하나였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요셉의 집을 많이 찾게 되었다. 예수는 그 신성한 책을 알렉산드리아의 요셉의 친구와 친척들로부터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만 여섯 살 되는 생일에 듣고 나서, 이 귀중한 사본의 관리를 맡았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쉽사리 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여섯 살이 채 안 되었을 때, 예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든 것을 아는 듯 보였다. 막 일어난 가벼운 지진의 원인을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이야, 나는 정말 모른다”는 요셉의 말을 듣고, 예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불안한 각성이 시작되었고, 예수는 땅에 있는 그의 부모가 완전히 지혜롭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요셉은 처음에 하나님이 지진을 일으킨다고 알려주려 했지만, 오히려 더욱 난처한 잘문을 야기할 것이 뻔했다. 자연이나 사회 현상에 관한 나이 어린 예수의 질문은, 하나님이나 악마의 책임이라는 생각 없는 말로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예수는 선한 영과 악한 영이 사람에게 나타나고, 자연현상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유대민족의 그런 교리들을 아주 일찍부터 의심하게 되었다.

예수가 여섯 살이 되기 전, 기원전 1년 초여름에, 사가리아와 엘리자벳과 그 아들 요한이 나사렛 가족을 방문했다. 예수와 요한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방문객들은 며칠 머무르면서 두 아들의 장래 계획을 이야기했지만, 두 아이는 집 꼭대기에서, 나무토막들을 가지고 모래 속에서 놀았고,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참으로 사내다운 방식으로 즐겁게 지냈다.

예루살렘 근처에서 온 요한과의 만남 이후, 예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비상한 관심과 안식일 의식, 회당의 설교, 반복되는 기념 축제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요한의 아버지는 모든 계절의 의미들을 설명했다. 첫째는 유다 마카비의 모세 예배 부활을 위한 성전 봉헌 기념으로 한겨울 8일 동안 불을 밝히는 것, 다음은 에스터를 통해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부림절, 이어 한 주일 내내 무교병을 먹는 엄숙한 유월절, 그 뒤로 첫 열매의 추수 축제, 마지막으로, 가장 엄숙한 새해의 축제일인 속죄일이었다. 대부분 어린 예수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가장 즐거운 축제일은 초막절이었다. 이때는 온 유대 민족이 해마다 휴가로 초막에서 야영하면서 노는 때였다.

123:3.6 이 해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기도에 관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지상에서 아버지 요셉과 대화하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고집했다. 엄숙하고 경건하게 신과 교통하지 않는 것, 특히 어머니를 좀 당혹케 했지만, 그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배운대로 기도를 했지만 이후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조금만 이야기 할게요”라고 주장했다.

이해 6월 요셉은 나사렛 작업장을 형제들에게 넘기고 건설업자로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 가족의 소득은 3배가 넘게 늘어났다. 가족이 늘고 교육과 여행을 위한 소비도 늘었지만 요셉의 소득 증가는 지출과 보조를 맞추었다.

예수는 가정 규율에 대한 싫은 감정과 격렬한 충동을 조정하는데 큰 진전을 이루었다. 마리아는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였지만 엄격한 훈육자였다. 그러나 요셉은 소년과 함께 앉아서 가족 전체의 복지와 평안을 고려하여, 개인의 욕구를 통제하는 진정한 근본적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였다. 그러면 예수는 기꺼이 부모가 바라는 것과 가족의 규칙을 영리하게 지켰다.

남는 시간의 대부분―집안에서 어머니가 도움이 필요치 않을 때―낮에는 꽃과 식물, 밤에는 별을 공부하는 데 쓰였다. 그는 드러누워서 경이에 찬 눈으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습성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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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곱 살 되던 해 (서기 1년)

123:4.1 이 해는 정말로 예수의 일생에서 사건이 많은 해였다. 1월 초에 갈릴리에 60 Cm의 깊이 눈이 내렸는데, 예수 평생 가장 큰 폭설이었고, 나사렛에서 1백 년 만에 처음이었다.

예수의 시절에 유대인 아이들의 놀이 생활은 비교적 제한된 편이었다; 너무나 자주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더 진지한 것들로 놀이하는 경우가 흔했다. 아이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놀이 등, 그들이 자주 목격하고, 또 볼만한 광경을 흉내 내며 놀았다.

예수는 이웃 소년과, 동생 야고보와 함께 목수 작업장에서 대패밥과 나무토막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 예수는 반드시 부모가 바라는 대로 순응했다. 그는 열네 살까지 거의 항상 명랑하고 밝았다.

마리아는 비둘기장을 두었고, 비둘기 판매 이익을 특별 자선기금으로서 사용했다. 예수는 십일조를 공제한 그 기금을 관리했다.

예수에게 유일한 사고가 터졌는데, 침실로 통하는 뒤뜰의 돌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다. 보통 3월과 4월에 부는 모래 폭풍이 예상치 않게 7월에 불어서, 늘 습관대로 집 꼭대기에서 놀다 내려오면서 모래 때문에 보이지 않아 넘어졌다. 이 사고로 요셉은 계단 양쪽에 난간을 만들었다.

123:4.6 이 사건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현세에 보호하는 1차 중도자 한 명과 2차 중도자 한 명이 그 아이를 지키는 데 배치되었는데, 이들이 소홀한 탓으로 돌릴 수 없고 수호 세라핌의 책임이라 할 수도 없었다.

하늘 존재들은 물리적 성질을 가진 보통 일에 멋대로 간섭하지 않는다. 보통 상황에서 중도자들은 큰 운명을 가진 남녀의 몸을 지키기 위해 물질 조건에 간섭할 수 있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상관의 특정한 명령에 따라서 물질 조건에 간섭할 수 있다.

이것은 캐묻기 좋아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년에게 생긴 사소한 한 사건일 뿐이다. 활동적인 소년의 아동기를 그려본다면, 여러분은 예수가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얼마나 많이 걱정을 끼쳤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사렛 가족의 넷째 식구 요셉이 서기 1년 3월 16일, 수요일 아침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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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사렛에서 보낸 학교 시절

123:5.1 예수는 7살이 되어 회당 학교 정식교육을 시작했고, 8월에 나사렛 학교에 들어갔다. 예수는 이미 아람어와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읽고 쓰고 말했고, 이제 히브리어를 익혀야 했다. 그는 새 학교 생활에 참으로 열심이었다.

예수는 3년 동안―열 살이 될 때까지―그는 나사렛 회당의 초등 학교를 다녔다. 히브리어로 율법서 (토라, 곧 모세 5경)의 기초를 공부했다. 13살 되던 해에 회당 학교를 졸업하였고, 회당 책임자들은 "계명의 아들"이 된 그를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공동체의 시민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참석이 필요하여 그 해에 처음으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유월절에 참석했다.

나사렛에서 생도들은 반원을 이루어 하잔(선생), 교육자와 마주 보고 앉았다. 레위기에서 시작하여 다른 율법서들까지 공부하였고, 선지자와 시편의 공부가 뒤따랐다. 나사렛 회당은 히브리어로 된 성서의 완본을 한 권 소유하였다. 열두 살이 되기 전까지 성서만 공부했다.

예수는 히브리어를 일찍 통달했고, 유명한 방문객이 나사렛에 없을 때는, 안식일 예배에 회당에서 히브리 성서를 읽어달라고 자주 부탁을 받았다.

이 회당 학교에는 교과서가 없었다. 하잔이 한 마디 말하고, 생도들은 한 목소리로 따라서 되풀이하곤 했다. 율법서에 접근할 때, 학생들은 큰 소리로 읽고, 늘 되풀이하면서 수업을 했다.

123:5.6 예수는 아버지의 수선 작업장에 드나들면서, 지구의 사방에서 온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리스어를 거침없이 말했기 때문에, 여행자와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나사렛은 카라반이 경유하는 지점이요 여행의 교차로였고, 그 주민은 대체로 이방인이었다. 갈릴리에서는 유대인이 자유롭게 이방인과 섞였다. 이로 인하여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속담이 예루살렘에서 생기게 되었다.

예수는 주로 집에서 도덕 훈련과 영적 교양을 얻었다. 지적 교육과 신학 교육의 대부분은 하잔으로부터 얻었다. 동료 인간들, 젊은이와 늙은이, 유대인과 이방인, 이렇게 섞임으로, 인류를 알 기회를 주었다.

회당에서 그는 명석한 학생이었고, 나사렛 하잔은 "소년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 보다 "예수의 파고드는 질문으로부터 더 배웠다"고 생각한다고 요셉에게 말했다.

공부 과정 전체를 통해서, 예수는 회당에서 정식 안식일 설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큰 영감을 얻었다. 자라면서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견해를 들었는데, 나사렛 회당이 히브리 사상과 문화의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123:5.11 7살에 학교에 들어갔을 때 유대인은 의무 교육법을 막 시행했다. 학생 시절을 통해 생도들은 자신을 안내할 일종의 황금률을 고르는 것이 관례였고, 열세 살 때 졸업식에서 예수는 이사야에서 선택하였다. "주 하나님의 영이 내게 다가오시니, 주가 내게 기름을 부으셨다. 그는 온유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가 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영적으로 갇힌 자를 풀어 놓으라고 나를 보내셨다.”

나사렛은 유대 국가에서 24 사제 중심 가운데 하나였다. 나사렛에서는 안식일을 더 자유롭게 지켰다. 따라서 요셉이 안식일 오후에, 예수를 데리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곤 했는데, 거기서는 온 갈릴리와 갈멜 산의 긴 줄기를 볼 수 있었고, 아버지로부터 여러번 엘리야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선지자는 아합을 꾸짖고 바알 사제들의 비리를 폭로했다. 북쪽으로는 헤르몬산의 눈 덮인 봉우리가 거의 900미터까지는 만년설로 하얗게 빛났다. 동쪽으로 요단강 유역, 멀리 모압 지방의 험한 산이 놓여 있었다. 남쪽과 동쪽에도 데카폴리스 지역에 그리스ㆍ로마식의 도시들을 볼 수 있었다.

예수는 사방에서 카라반들의 행렬을 지켜볼 수 있었고, 남쪽으로 넓고 기름진 에스드랠론 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고지까지 오르지 않을 때, 그들은 시골 길을 통해서 거닐었고, 철 따라 다채로운 분위기에 젖어 있는 자연을 공부했다. 예수가 아주 어릴 때 했던 공부는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로 자연을 접촉한 것이었다.


여덟 살이 되기 전에, 예수는 나사렛의 어머니와 젊은 여자들에게 알려졌고, 이들은 샘물가에서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해에 송아지 젖을 짜고 동물 돌보고,. 이 해와 그 이듬해에, 또한 치즈 만들기와 직물 짜기를 배웠다. 이 무렵에 예수와 이웃 소년 야곱은 도공 나단과 좋은 친구가 되었고, 나단이 진흙으로 모양 만드는 것을 보고 자라서 도공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단은 여러 가지 물건과 동물 형태 만들기를 경쟁하라고 제안하여 그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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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덟 살 되던 해 (서기 2년)

123:6.1 예수는 비범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부지런한 생도였고, 반에서 상급인 3분의 1에 속했다. 공부를 잘해서 매달 한 주는 출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주간에 어부인 삼촌과 함께 갈릴리 바다 해안가에서 보내거나, 또는 다른 삼촌(어머니의 형제)의 농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그를 과도하게 신경썼으나, 집을 떠나는 여행에 차음 마음을 놓게 되었다. 예수의 삼촌과 숙모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고, 그와 함께 있으려고 친척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기도 했다. 이해 1월 처음으로 삼촌의 농장에서 한 주 동안 머물렀고, 5월에 갈릴리 바다에서 처음으로 한 주 동안 고기잡이 경험을 가졌다.

이 무렵에, 예수는 다마스커스에서 온 어느 수학 선생을 만나 새로운 계산 기술을 배우고 나서, 몇 해 동안 수학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수ㆍ거리ㆍ비율에 대하여 날카로운 감각을 개발했다.

예수는 동생 야고보를 아주 좋아하기 시작했고, 이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 그에게 비로소 알파벳을 가르쳤다.

이 해에 예수는 음악에 관한 것은 무엇이나 특별히 좋아했다. 열한 살이 되었을 때 솜씨 좋은 하프 연주자가 되었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특별한 해석이 담긴 즉흥 연주 하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다.

123:6.6 예수는 학교에서 부러울 만한 진보를 계속했어도, 부모나 선생들에게는 만사가 순조롭지는 않았다. 그는 과학과 종교, 특히 지리학, 천문학에 관한 질문으로 당황하게 만들었다. 왜 팔레스타인에 우기와 건기가 있는지 찾아내려고 특별히 애썼다. 또한 나사렛과 요단강 유역의 기온 차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총명하지만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그런 질문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해 서기 2년 4월 14일 금요일 저녁에, 셋째 동생 시몬이 태어났다.

2월에, 요한의 아버지 부추김으로 예루살렘으로 예수를 데려가려고 예루살렘의 랍비 학교선생 나호르가 나사렛에 왔다. 마리아는 찬성하는 쪽으로 반은 기울었다. 맏아들이 유대인의 구원자, 메시아가 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요셉은 망설였다. 그 운명이 무엇이 될까 깊은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이 땅에서 어떤 위대한 사명을 이룰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나호르의 조언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는 예수를 예루살렘에서 머무르게 하려는 제안이 지혜로운지 더욱 묻게 되었다.

요셉과 마리아의 의견차이로, 나호르는 그 문제 전체를 예수가 결정하도록 하게 하였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 이웃인 석공 야곱과 의논했다. 이틀이 지난 뒤에, "부모의 결정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라고 말한 후, 추가해서, "완전히 확실치 않지만 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집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나를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사람들보다, 나를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대답을 듣고 나호르는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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