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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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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차 개정 합본 - 용어 통합

3. 게라사에서 하신 설교
곧고도 좁은 길, 처음인 많은 사람이 나중이 되리라
“내가 문에서 서서 두드리나니...”
4. 사고(事故)에 대한 가르침
5. 필라델피아의 회중
 - 후기의 봉사와 아브너의 죽음

제 166 편
마지막 북 페레아 방문



글 쓴 이 : 중도자 위원회
활동시기 : 서기 30년 2월 11일 ~ 20일
장 소 : 북 페레아 지방


166:0.1 2월 11일부터 20일까지, 예수와 열두 사도는 아브너의 동료와 여인단의 단원들이 일하고 있는 북 페레아 지방을 둘러보았다. 예수는 일이 잘 진행되는 것을 발견했고, 기적과 이적이 따르지 않아도 하늘 복음이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도들이 주목하도록 했다.

페레아의 석 달 동안 전도 사업은 열두 사도의 도움 없이 진행되었고, 예수의 성격보다 그의 가르침에 초점을 두었다. 예수가 부활한 후에 추종자들은 바로 그의 가르침에서 벗어났고, 기적을 베푼 예수의 영화로운 기억을 중심으로 초대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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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가바의 바리새인들

166:1.1 2월 18일(토), 안식일 아침에 라가바에 나다니엘이라는 부유한 바리새인이 동료 바리새인들과 예수와 열두 사도 약 20명을 위해 아침 식사를 차렸고, 예수를 귀빈으로 초청했다.

예수가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이미 식탁에 앉았고, 주는 손을 씻으러 물 대야에 가지 않고, 나다니엘의 왼쪽 자리에 앉았다. 예수의 가르침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손씻는 예식행위를 예수가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다니엘은 충격을 받았다. 예수는 음식의 각 과정 뒤에나 식사가 끝난 뒤에도 손을 씻지 않았다.

나다니엘과 바리새인들이 불쾌히 여기며, 비웃자 마침내 예수는 말했다. “나는 네가 나를 초대하여 함께 빵을 나누고 아마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에 관하여 물으려고 초대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례적인 예식 지키는 것을 구경할려고 나를 불렀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 수고를 마쳤으니 손님인 나에게 무엇으로 경의를 표하겠느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여기 바리새인 다수가 친구로서 나와 함께 있고 몇몇은 내 제자이기도 하나, 대다수의 바리새인은 빛을 보고도 진리를 거절하고 있다. 마음속의 혼은 독선과 탐욕과 착취, 그리고 온갖 모양의 영적 사악함이 가득하다. 너희 지도자들은 감히 사람의 아들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있도다. 자선금을 내고 십일조 내는 것이 너희의 죄를 씻어주고 모든 사람의 재판관이 계신 앞에 깨끗이 설 수 있게 할 것이라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아버지의 계시를 깔보면서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찾고 시장에서 아첨하는 인사를 몹시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화가 있으니라!”

예수가 떠나려고 했을 때, 한 율법사가 말했다: “주여, 당신의 말씀은 우리도 꾸짖나이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이나 율법사에게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예수는 서서 대답했다: “너희는 바리새인과 같이 무거운 짐을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면서, 잔치에서 상석에 앉는 것과 긴 옷 입기를 즐기고 있다. 서민들로부터 지식의 열쇠를 빼앗은 율법사 모두에게 화가 있으리라! 바로 자신들은 진리의 길로 들어가기 싫어하면서, 그곳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방해하고 있다. 저희는 흰 칠한 무덤 같아서, 겉으로 아름답게 보여도 속은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모양의 영적 더러움이 가득하다.”

166:1.6 식탁에서 말씀을 마쳤을 때, 예수는 음식을 들지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 바리새인들 가운데 더러는 그의 가르침을 믿고 하늘나라에 가입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그를 두고 보려고 마음먹었다.

바리새인들이 각별히 주의한 것이 꼭 세 가지가 있었다:

1. 엄격히 십일조를 바치는 관습.
2. 정화 율법을 빈틈없이 지킨다.
3. 바리새인이 아닌 모든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피한다.

166:1.11 이때 예수는 처음 두 관습이 무익함을 밝히려고 애썼고, 다른 기회에 바리새인 아닌 사람들과 교제하기 싫어하는 태도를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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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 명의 문둥병자

166:2.1 예수와 열두 사도는 사마리아 경계 가까이 아마투스로 갔는데 문둥병자 열 명의 무리와 마주쳤다. 이 중에 아홉은 유대인이요 하나는 사마리아인이었다. 아홉의 유대인은 같은 병을 앓고 있었기에 사마리아인에 대한 종교적 편견을 극복한 상태였다. 예수가 나타나자 멀리 떨어진 곳에 그들은 소리쳤다: “주여, 우리의 병을 깨끗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자비를 보이소서,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고친 것 같이 우리를 고쳐주소서.”

예수는 페레아의 이방인과 정통이 아닌 유대인들이 70인이 전파한 복음을 왜 더 잘 수용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또한 갈릴리 사람들, 사마리아인조차 복음을 쉽게 수용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열두 사도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느낌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열심당원 시몬이 문둥병자들 중 사마리아인을 보고 그들을 피해 예수가 도시로 들어가도록 유인하려 애썼다. 예수가 말했다: “시몬, 그 사마리아인이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찌하겠느냐? 이 열 사람을 온전히 만들면, 그 사마리아인이 유대인들보다 더 고마워할지 모르는데, 너의 생각을 확신할 수 있느냐?” 시몬: “당신이 저희를 깨끗게 하시면,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렇다. 사람들의 고마워하는 태도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자비의 진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문둥병자들에게 가까이 가면서 예수가 말했다: “너희가 온전히 되고 싶으면, 당장에 가서 모세의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사제들에게 몸을 보이라.” 가는 동안에 그들은 온전하게 되었다. 자기가 치유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사마리아인은 예수께 찾아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리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아홉 유대인도 치유된 것을 깨달았고, 고맙게 여겼지만 사제들에게 몸을 보이려고 계속 길을 갔다.

예수는 시몬을 보고 말했다: “열 명이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다른 아홉 유대인은 어디 있는 것이냐?” 예수는 사마리아인에게 말했다: “일어나서 길을 가라. 너의 믿음이 너를 온전케 하였다.”

166:2.6 시몬은 땅만 바라보고 있었고, 사도들은 모두 예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두 사람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수도 말이 없었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열 사람 모두가 문둥병이라 믿었어도 오직 네 사람만이 문둥병이었고, 나머지 여섯은 피부병이었다. 사마리아인은 정말로 문둥병이었다.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문둥병자들을 고친 것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했다. 아마투스로 들어가는 동안에 주는 논평했다: “주인집의 아이들이 어찌하여 축복을 당연히 여기는지 너희가 직접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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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라사에서 하신 설교

166:3.1 예수와 열두 사람이 게라사에서 하늘나라 사자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믿는 바리새인 하나가 이렇게 물었다: “주여, 실제로 몇 명이나 많이 구원을 받겠습니까?” 예수는 대답했다:

“너희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이나, 오직 입양된 이방인만이 구원의 희망이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집트를 떠난 모든 무리 가운데서 오직 갈렙과 요수아가 약속된 땅으로 들어갔다고 성서가 기록하므로, 적은 수만 하늘나라의 문을 찾으리라 추리하였다.

“너희 사이에 또 다른 속담이 있다 :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은 곧고 좁으며 거기로 인도하는 문은 좁아서, 구원을 찾는 자 가운데 거의 아무도 이 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선언하노니, 구원은 먼저 너희 개인이 선택하는 문제이다. 생명의 길로 이끄는 문이 좁더라도, 들어가기를 진심으로 구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기에 넉넉히 넓으니, 내가 그 문이다.

“하늘나라를 비웃던 자가 그곳으로 가기를 구하면, 내가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노라.’ '우리가 당신과 어울려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우리의 거리에서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때, 다시 말하리니, ‘나는 너희를 모른다. 온 땅의 재판관이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불의의 일을 기뻐한 너희는 모두 우리를 떠나라.'

“그러나 두려워 말라. 영생을 찾으려고 성실하게 바라는 자는 누구나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처럼 영적 권능으로, 그리고 생생한 신앙으로 집요하게 공격하여 하늘나라를 차지할 자는 동,서 남, 북에서 나올 것이다. 첫째인 많은 사람이 마지막이 되겠고, 마지막인 자가 여러 번 첫번째가 될 것이다.”

166:3.6 이것은 오래 되고 귀에 익은, 곧고 좁은 길의 속담을 정말로 이상하게 새로 해석한 말씀이었다.

사도들과 많은 제자가 예수의 말씀을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너희가 영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 보라! 사람들의 마음 문 앞에 서서 내가 두드리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저녁을 같이 들고 그에게 생명의 빵을 먹이리라. 우리는 한 가지 정신과 목적을 가지겠고, 마찬가지로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찾는, 길고도 열매가 풍성한 봉사를 하면서 늘 형제가 되리라. 나는 문이요 새로운, 생명의 길이니 누구든지 바라는 자는 영생을 찾아서 끝없이 진리 탐구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심지어 사도들은 영원한 영적 가치를 붙잡기 위해 모든 세속적인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해방된 아들로서, 영적 힘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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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고(Accidents)에 대한 가르침

166:4.1 필라델피아로 가는 길 정오에 쉬려고 멈추었을 때 토마스가 예수에게 물었다: “영적 존재들이 물질세계의 사건에 관여하는지, 더 나아가 천사와 다른 영 존재들이 사고를 막을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토마스의 물음에 답하여 예수는 말했다: “내가 오랫동안 함께 있었거늘 아직도 그런 질문을 계속하느냐? 아버지를 계시하는 것과 병든 자녀들을 고친 것을 제외하고, 물질생활에서 영적 세계의 힘이 나타난 것을 보았느냐?

“너희의 조상들은 번성하는 것은 신이 인정하고, 불행은 하나님의 불만의 증거라고 믿어 왔다. 그것은 미신이다. 많은 가난한 자들이 기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즉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지 않았느냐? 재산이 신의 은혜를 증거한다면, 어찌하여 부자들이 여러 번 하늘로부터 온 좋은 소식을 거부하느냐?

“아버지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시며, 또한 햇빛도 올바른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춘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 열여덟 사람이 죽었음을 알 것이다. 이 죽임 당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형제보다 더한 범죄자일 거라 생각지 말라. 이 사람들은 다만 우연한 사고에 죄 없이 희생된 것이다.

166:4.5 “너희의 생활에서 세 종류의 사건들이 있다.

“1. 너희와 동료들이 삶의 일부로서 정상적인 사고를 함께 당할 수 있다.

“2. 너희는 자연 사고에 어쩌다가 희생될지 모르며, 그 일은 미리 정해지거나, 영적 세력들이 일으키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3. 너희는 자연 법칙을 준수하기 위한 직접적인 노력의 수확을 거둘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무화과나무를 심어 열매를 얻지 못하자, 일꾼들에게 일러 나무를 베어 버리라 하였다. 우두머리 정원사는 한 해를 더 두고 거름을 주어 키웠고, 열매 맺는 법칙을 따랐을 때, 그 나무가 좋아져서 풍부한 수확을 얻어 보상을 받았다.

“질병과 건강의 문제에서, 몸 상태는 물질적 원인에서 생겨난 결과임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166:4.11 “아버지의 인간 자손은 물질적 축복을 받는 능력을 똑같이 가졌다. 비록 아버지는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어도, 영적 선물을 수여할 때, 아버지는 사람이 얼마큼 믿는가, 그리고 사람이 언제나 기꺼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동할 생각이 있는지에 제한을 받는다.”

그들이 필라델피아를 향해 여행하는 동안, 예수는 계속해서 가르치고 여러 물음에 대답했지만, 그들은 이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가 죽고 부활한 뒤에도 그들은 땅에서 그의 사명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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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필라델피아의 회중

166:5.1 예수와 열두 사도는 필라델피아에서 전도하는 아브너와 그 동료들을 찾아보러 갔다. 필라델피아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의 무리가 70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필라델피아 회당은 산헤드린의 감독 하에 있은 적이 없고, 예수와 그 동료들에게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아브너는 필라델피아 회당에서 하루에 세 번 가르치고 있었다.

바로 이 회당은 나중에 기독교 교회가 되었고, 동쪽 지역에서 복음 선교의 본부였고, 몇 세기 동안 기독교에서 배움의 중심이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언제나 필라델피아의 유대인들과 다투고 있었다. 예수가 부활하신 뒤에, 예루살렘 교회는 필라델피아 회중과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따라서 아브너와 그의 행적에 대하여 복음서에 왜 아무런 언급이 없는지를 설명한다. 북쪽 및 서쪽에서 안티옥이 초대 교회의 본부였던 것 같이, 남쪽과 동쪽에서 필라델피아는 초대 교회의 본부였다.

아브너는 관할권 문제로 베드로, 야고보(예수의 아우)와 사이가 틀어졌고, 신학 면에서 바울과 갈라졌고, 예수의 가르침을 개조하려는 바울에 저항하였다.

이처럼 아브너는 고립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의 아우 야고보에게 감히 도전한 적이 있었고, 그런 행위는 모든 옛 동료로부터 그를 실질적으로 고립시켰다. 아브너는 바울의 사명을 전적으로 지지하기는 했어도, 예수 가르침의 바울 판을 통렬하게 반대했다. 마지막 몇 해에, 아브너는 바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일생에 가르친 것을 교묘하게 부패시킨 자” 라고 비난했다.

166:5.6 필라델피아의 신자들은 예수의 종교를 예수가 실천하고 가르친 그대로, 땅에서 어느 다른 집단보다도 더 엄격하게 고수했다.

아브너는 89세가 되기까지 살았고, 필라델피아에서 서기 74년, 11월 21일에 죽었다. 죽는 바로 그날까지, 그는 하늘나라 복음을 충실히 믿는 신자요, 가르친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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