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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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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차 개정 합본 - 용어 통합


제 155 편
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달아나다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29년 5월 22일 ~ 6월 9일
. 장소 : 갈릴리 북부


155:0.1 예수와 스물네 사람은 사건이 많았던 이 일요일에 게레사 근처에 배를 댄 뒤에, 벳세다 줄리아스 남쪽에 있는 어느 아름다운 공원에서 밤을 지냈다. 잠들기 전에 주는 추종자들을 모으고 갈리리 북부를 지나는 예정된 여행 계획을 의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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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째서 이교도가 격분하는가?

155:1.1 예수는 시편의 저자가 이 시절에 대하여 어떻게 말했는지를 기억하라고 했다. '어째서 이교도가 격분하고 민족들이 헛되이 음모를 꾸미는가? 기름 부은 자에 대항하여, 관원들이 함께 의논 하는도다.’

“너희는 오늘날 이 말씀이 눈 앞에서 이루어짐을 볼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그가 인자와 인자가 땅에서 이룰 사명에 대하여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내 나라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자비롭게 선포되며 사심 없는 봉사로 세워진다. 시편의 저자는 ‘두려움으로 주를 섬기라’ 훈계하였지만, 나는 너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높은 특권을 받을 것이라 말한다.

예수는 스물네 사람에게 계속 가르치며 말했다: “이교도가 우리에게 격분하는 것은 저희가 진리를 모르는 까닭이다. 이교도는 저희의 목표를 얻으려고 정면으로 공격하지만, 너희는 너무 오랫동안 동경하는 죄가 있었다. 대체로 지난날을 뉘우치고 오늘을 불평하며 헛되이 앞날을 희망하며 봉사하는 것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쓸데없이 허왕된 것을 꿈꾸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서 용감히 하늘나라를 세우는 일에 힘을 내야한다.

“너희는 무슨 일을 하여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지나치게 전문화되지 말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전통 때문에 편견으로 눈이 멀고 두려움으로 마음이 굳어졌다. 그리스인을 생각해 보라. 저희는 종교가 없이 과학을 가졌으나 유대인은 과학이 없이 종교를 가졌다. 이렇듯 인간이 좁고 혼란스러운 진리의 붕괴를 받아들이도록 현혹될 때, 유일한 구원의 희망은 진리와 조정되어 개종되어야 한다.

"이 영원한 진리를 강조해서 말한다. 진리와 조율됨으로, 삶에서 이 아름다운 의의 고난을 본보기로 삼는 법을 배우면, 동료들은 너희가 얻은 것을 얻으려고 찾아갈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끌리는 것은 너희의 진실된 자질, 즉 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너희가 온전히 의로운 삶을 살았는지를 재는 척도이다."

155:1.6 사도와 전도사들이 잠을 청하기 전에, 주는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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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도사들이 코라진에서

155:2.1 5월 23일에, 예수는 베드로에게 열두 전도사와 함께 코라진으로 가라고 지시했고 그는 열한 사도와 함께 케자리아 빌립비를 향하여 떠났다.

베드로와 전도사들은 코라진에서 2주 동안 머무르면서 작은 무리의 신자들에게 하늘나라 복음을 전도했다. 베드로의 지시대로, 열두 전도사는 치유에 대하여 말을 별로 하지 않았고, 영적 진리를 열심히 전도하였다. 이 2주 동안은 전도사들에게 가장 보람 없는 기간이었다. 하늘나라로 사람들을 들어가라고 설득하는 만족감을 이렇게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 자신의 혼을, 그리고 새 생활의 영적 길에서 혼이 얼마나 진보하였는지 더욱 진지하고 정직하게 돌이켜보았다.

아무도 더 하늘나라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듯 보였을 때, 6월 7일 화요일에 베드로는 동료들을 한데 부르고 예수와 사도들과 합세하려고 케자리아 빌립비를 향하여 떠났다. 그들은 수요일 정오쯤 도착하여 저녁 내내 코라진의 체험을 서로 나누었다. 예수는 씨뿌리는 비유를 더 언급하였고, 실패의 의미에 대해 많이 가르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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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케자리아 빌립비에서

155:3.1 케자리아 빌립비 가까이에서 이렇게 2주 머무르는 동안에 신자들의 무리는 거의 늘지 않았다. 예수는 사도들과 날마다 이야기했고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받아들이는 영적 기쁨을 깨닫는 것”임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케자리아 빌립비에서 머무른 것은 열한 사도에게 진정한 시험이었고 견디기 어려운 2주였다. 이 시절에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은 참으로 크고 벅찬 모험이었다. 2주 동안 전향자를 거의 얻지 못했어도, 주와 날마다 회의를 하면서 유익한 것을 많이 얻었다.

진리를 구체적 신조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영적으로 침체되고 죽어 가고 있으며, 진리가 배타적인 모습을 갖출 때 창조력과 생명력을 잃어 궁극에는 굳어진 화석이 된다는 것을 사도들은 깨달았다.

그들은 시간과 영원 속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기를 먼저 배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많은 사람을 최선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 형제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만큼 너희는 그렇게 나에게 행한 것이다.”

케자리아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의 하나는 ‘참된 종교는 사람이 가장 높고 참된 확신에 진심으로 충성하는 것이다’는 가르침이었다.

155:3.6 “종교적 열망이 겨우 물질이면, 과학 지식이 늘어남에 따라서 궁극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빼앗길 것이다. 종교가 영적이면 과학의 진보는 믿음을 흔들 수 없다”고 예수는 훈계하였다.

종교가 온전히 영적 동기를 가졌을 때, 종교는 모든 인생을 갈수록 더 가치 있게 만들며, 높은 목적으로 인생을 채우고 초월적 가치로 인생에 위엄을 주며, 훌륭한 동기로 인생을 북돋우고, 인간의 혼을 위로한다는 것을 그들은 배웠다.

어떤 문명도 종교의 최선을 잃고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예수는 거듭해서 사도들에게 가르쳤다. 종교적 체험 대신에 종교적 상징과 예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큰 위험이 있음을 계속하여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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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페니키아로 가는 길


155:4.1 6월 9일, 벳세다에서 다윗의 전령들이 가져온 소식을 받은 뒤에 25명의 일행은 페니키아 해안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룻츠 가까이서 점심을 먹으려고 멈추었을 때, 시몬 베드로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아시고, 그의 영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일에 우리를 지원하시는데, 왜 우리가 적들의 위협을 받고 도망치고 있습니까? 왜 진리의 적들과 대결하지 않습니까?” 토마스가 끼어들어 물었다: “우리 적들의 종교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알기 원합니다.” 예수는,“베드로의 물음을 내가 무시하고 싶지 않으나, 유대인 권력자들과 충돌하기를 내가 피하는 까닭을 오해할 수 있으니, 차라리 토마스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택한다면, 너희들 모두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질문의 대답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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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 종교에 대한 말씀

155:5.1 이 강론을 현대의 말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세계의 종교들은 두 가진 기원―자연의 기원과 계시적 기원―이 있지만, 어느 시대나 세 가지 형태로 종교적 욕구가 나타난다.

1. 원시 종교. 주로 물리적 자연을 믿는 두려움의 종교.

2. 문명의 종교. 확립된 종교적 전통의 권위를 가진 지적 신학.

3. 참된 종교―계시 종교. 초자연적 계시, 영원한 실체들을 꿰뚫어보는 부분적 통찰력,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무한한 성품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한 번 보는 것―인간의 체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영의 종교.

155:5.6 예수는 원시 형태의 예배가 총명한 종족들의 종교에서 너무 많이 지속하는 사실을 한탄하였다. 지적 종교는 교회의 권위로 버티지만, 영적 종교는 인간의 체험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주는 계속하여 이러한 진리를 뚜렷하게 설명했다:

“인류가 영적 체험을 널리 인정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개인적으로 지적 동의만 요구하는 권위적 종교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의 종교에는 진취적 인간 체험을 겪는 벅찬 현실과 씨름하는 믿음의 모험에서 지성과 혼의 적극적 참여가 따른다.

“정착되고 굳어지고 확립된 권위의 종교는, 어지럽고 산란해진 사람의 혼이 두려움에 떨고 불안에 시달릴 때 도피할 수 있는 즉석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지만, 신자들에게 오직 수동적인 지적 동의를 요구할 뿐이다.

“권위를 내세우는 종교와 그렇게 운명을 같이 함으로, 그들은 자아의 주권과 존엄성을 떨어뜨리며, 가장 가슴 떨리고 영감을 주는 다음과 같은 체험을 넘겨주게 된다. 즉 진리의 개인적 추구, 지적 발견의 위험에 부딪치는 흥분, 개인의 종교적 체험의 실체를 탐구하려는 결심,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서 최대의 모험―사람이 혼자 힘으로, 또 스스로 하나님을 찾다가 찾아내는 모험―에서 정직하게 얻는 개인적으로 승리하는 최고의 만족을 얻는 체험이다.

155:5.11 “영의 종교는 노력ㆍ투쟁ㆍ싸움ㆍ믿음ㆍ결심ㆍ사랑ㆍ충성ㆍ진보를 의미한다. 권위를 내세우는 신학은 신자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지 않는다.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선지자들의 신조를 권위의 종교로 만들었다. 우리는 새 종교를 선언하며, 전통의 종교와 목숨을 건 싸움에 들어가려 한다. 이 새 종교는 사람의 지성에 거하는 내 아버지의 신성한 영에게 주로 호소하는 종교이다. 그 종교는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이 직접 겪는 체험에서 열매가 확실히 나타난다.

예수는 스물네 사람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을 부르면서 말했다. `이제 너희는 어려움과 박해를 겪기 보다, 기성 종교와 화석화된 종교에 대한 이 쉬운 순응의 길을 택하려느냐? 하늘 나라의 영원한 진리, 살아있고 개인적인 경험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하는 만족을 깨닫는 동안, 인간에 대한 구원의 만족을 느끼겠느냐? 부드럽고, 편안함을 추구할 것이냐? 너희는 진리의 하나님의 손에 너희의 미래를 맡기기가 두려우냐? 너희는 누구의 아들이냐? 전통적 권위의 종교의 확실성과 지적 안정성의 쉬운 길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나와 함께 새로운 진리를 선포하는 불확실하고 골치 아픈 미래로 나아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선언할 것이냐? "

말씀을 듣던 스물네 사람이 모두 일어나서, 충성을 표시하려 했다. 예수는 그들을 멈추게 하고 말했다. “이제 너희는 따로 가서 내 질문에 대하여 냉철한 대답을 찾아내고, 그 대답을 내 아버지요 너희의 아버지께 거리낌 없이 용감히 대답하라.”

전도사와 사도들은 잠시 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갔다. 그들의 지성은 격려를 받고 영감을 받았으며, 감정은 예수의 말씀에 힘차게 움직였다. 안드레가 그들을 함께 불러 모았을 때, 주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페니키아로 떠나자. 여러분은 더 높은 지적 충성과 만족스런 영의 체험으로 변화되기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155:5.16 길을 따라 여행하면서 오후 3시에 멈추었고,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당신은 우리에게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더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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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교에 대한 둘째 강론

155:6.1 산허리의 그늘에서 멈춘 동안 예수는 계속 가르쳤다.

“너희의 동료들은 안전을 바라고 전통에 순응하기를 더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권위적 확신의 느낌을 버리고, 모험적이고 진취적 믿음을 주는 영의 보장을 선택하였다. 옛 선지자들의 말씀은 끝났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계속하여 세상에 주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요구한다. 물려받은 민족의 신념을 버리고 개인적 믿음으로 옮겨가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 참된 영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진보할 것이다.

너희의 종교는 살아있는 믿음을 얻는 실제 체험으로 바뀔 것이다. 영의 종교는 점진적 계시에 있고, 영적 이상과 영원한 실체 면에서 더욱 높고 거룩한 것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도록 늘 너희에게 손짓한다.

권위의 종교는 안전한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너희는 영적 자유와 종교적 해방을 잃어버리게 된다. 영의 종교는 영의 인도하심이 어디로 데려가든지 언제까지나 진리를 따르도록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155:6.6 “거짓 종교 선생들에게 치욕이 있을진저! 그들은 갈급한 사람들을 어둠침침하고 먼 과거로 도로 끌어다가 거기에 버려두려 한다. 거짓 종교 선생들은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놀라고, 진리가 새롭게 계시될 때마다 당황한다.

너희에게 훈계하노니, 항상 옛 선지자들을 인용하고 이스라엘의 영웅들을 찬양하는 관습을 버리라. 왜 인간의 존재에서 최대의 모험, 하나님을 나 혼자서 찾아내는 모험을 버리려 하는냐?

지성의 종교는 종족의 여러 가지 관점에 충실해야 하므로 통일될 수 없고, 형제 사랑은 오직 영의 종교를 위에서 부여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권위의 종교는 오직 사람들이 서로 대립하게 만들며, 영의 종교는 사람들을 모으고, 서로 이해하게 한다. 권위의 종교는 굳어져서 생명이 없는 신조들로 변하며, 영의 종교는 사랑으로 봉사하고 자비를 베풀게 하여 사람을 고귀하게 만들며 기쁨과 자유로 이끈다.

내 아버지는 모세의 시절 이후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투쟁, 길고도 지칠 줄 모르는 이스라엘의 투쟁을 놓치지 않고 주목해 왔다. 이스라엘이 온갖 실패와 실수를 겪었어도, 점진적으로 모세로부터 아모스와 호세아 시절까지, 우리의 조상은 온 세계에 영원한 하나님의 그림, 갈수록 더 맑고 참된 그림을 늘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더 큰 계시를 받기 위하여 길이 준비되었으며, 너희는 그 계시를 함께 가지라고 부름을 받았다.

155:6.11 영에게 인도받는 자, 다시 말해서, 진리에 복종하고 사랑으로 고귀하게 되며, 자비에 지배되고 공평한 자의 생활에는 모든 것이 거룩하다.

다수가 하나님에 관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지성이 있어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내가 어린아이의 영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 까닭이다.

너희의 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면, 즉시 다른 사람들의 혼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모든 인간과 창조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것이다.

155:6.14 그러나 하나님을 찾아냈다고 사람들에게 증명하려고 애쓰는 잘못을 해서는 안된다. 두가지 증거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 일상생활에서 하나님 영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2. 전 생애의 계획이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추구하면서, 모든 것을 건다는 사실. 하나님의 계심을 미리 맛보았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꺼질 듯 가물거리는 아주 가냘픈 믿음에도 늘 반응한다. 어둠에서 빛으로 부름 받은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믿는 것을 기대하신다. 너희의 믿음이 육체ㆍ지성ㆍ영의 통합된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종교는 거친 현실이 두려워 피하는 신학적 피난처가 되어서는 안된다. 너희는 나의 사도이며, 오히려 하나님이너희를 찾았다. 너희는 영답게 변화시키는 이 체험의 사실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원한 모험을 하려고 너희가 요청하였다.

예수는 안드레에게 손짓하고 페니키아 서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서둘러 길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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