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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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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차 개정 합본 - 용어 통합


제 146 편
첫 번째 갈릴리 전도 여행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서기 28년 1월 18일 ~ 3월 17일
. 장소 : 갈릴리의 여러 도시


146:0.1 갈릴리 첫 대중 전도 여행은 서기 28년 1월 18일 일요일부터 약 두 달 동안 이어졌고, 3월 17일에 가버나움으로 돌아와서 끝을 맺었다.

이번 처음으로 예수는 사도들에게 자유롭게 전도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사람들을 섬기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며, 진지하게 기쁨으로 자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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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림몬에서 전도하다

146:1.1 작은 도시 림몬은 바빌로니아의 신, 공기의 신 람만을 숭배했다. 이들은 바빌로니아 및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 젖어 있었고, 따라서 예수와 스물 네 사람은 이 옛 믿음과 하늘나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하느라고 시간을 많이 썼다.

림몬의 많은 시민이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이 되었으나 후일에 신자들에게 큰 문제를 일으켰다. 짧은 일생 동안에 자연 숭배자들을 영적 이상을 찬미하는 완전한 단체로 바꾸기는 어렵다.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에 있던 관념, 곧 빛과 어둠, 선과 악, 시간과 영원에 관한 상급 관념이 기독교 교리에 흡수되었다. 이는 근동의 민족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을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나중에 필로가 히브리 신학에 플라톤의 이론을 흡수한 것은, 바울의 가르침을 그리스인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림몬에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처음 들은 토단은 나중에 메소포타미아로, 유프라테스를 지나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사람들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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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타파타에서

146:2.1 요타파타 전도 임무에서 특별한 것은 예수가 스물네 사람에게 강론하신 것이었다. 나다니엘은 기도ㆍ감사ㆍ예배에 관한 주의 가르침이 혼동되었다. 그의 물음에 답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현대의 표현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지성에서 부당한 것을 집요하게 의식하는 것은 인간과 창조자 사이의 영적 통신 회로와 기도 연결을 점차 파괴한다. 인간의 마음이 고의적으로 불의한 생각들을 품고 있을 때, 땅에 있는 자녀와 하늘 아버지 사이의 개인적 교통이 점점 줄어든다.

2. 신의 법칙과 어긋나는 기도는 파라다이스 신들에게 지긋지긋한 것이다. 신들이 영, 정신, 물질의 법칙에 따라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 바로 그 행위로 인하여 신들은 그런 필사자의 개인적 간청을 영 성격자들이 듣지 않게 한다.예수는 선지자 스가랴의 말을 인용했다. “‘저희가 듣기 싫어하여 등을 돌리고,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더라.
옳도다. 내가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내 율법과 말씀을 저들이 들을까 염려하여 저들의 마음을 돌처럼 굳게 하였다....’”

3. 하나님과 사람의 교통하는 경로에서 인간 쪽이 열리면 늘 신의 봉사를 이용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말씀하는 것을 들을 때, 하나님이 동시에 그 사람의 기도를 듣는다. 아버지는 구하기도 전에 너를 용서했지만, 네가 동료 인간을 용서할 때가 되어서야 너는 아버지의 용서를 체험할 수 있다.

4. 우주에는 자비가 피할 수 없는 공정의 기본 법이 있다. 시공의 영역에서 완전히 이기적인 사람은 파라다이스의 영광을 수용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해도 살아남기를 거절한 인간에게 강제로 구원을 줄 수 없다. 예수께서 다시 히브리 성서를 인용했다. “‘내가 불렀어도 너희는 듣지 않았고, 내가 손을 내밀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너는 나의 모든 충고를 무시했고, 나의 책망을 물리쳤도다. 너희가 나를 불러도 대답을 얻지 못하리라. 너희가 고통 받을 때 나를 열심히 찾아도 너희는 나를 찾아내지 못하리라.’”

5.자비를 받으려면 자비를 보여야 한다. 판단 받지 않으려면 판단하지 말라. 진지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무지하고 경험 없는 자녀들의 어리석은 기도를 글자 그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6.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온전히 전념하게 되면 그 기도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된다. 그러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 참된 아들이 바라는 것은 무한한 아버지가 뜻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 외에 다른 종류의 간구들은 충분히 응답받지 못한다.

7. 의인의 외침은 선과 진리와 자비의 아버지의 창고의 문을 여는 하나님 자녀의 신앙 행동이다. 이 좋은 선물은 자녀들이 다가와 사용하라고 아버지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기도는 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지만, 아버지를 향하는 사람의 태도를 바꾼다. 그 기도의 중심은 신의 귀에 도달하는 통행권이다.

8. 시간의 지연과 공간의 장애를 넘으려고 기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완전히 이기적인 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할 수 없다. 예수께서 말했다. “너의 길을 주께 맡기라. 그를 신뢰하라. 그가 행하리라. 주가 갈급한 자의 기도를 들으리라”

9. “너희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할지 의심 들면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러면 너의 진짜 필요와 소망에 따라, 내 아버지의 뜻을 제시할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기를 피하라. 너희 형제의 영적 진보를 위하여 더욱 기도하라. 물질적인 기도를 피하라. 영적으로 기도하고 영의 선물이 풍부하기를 기도하라.

10. 너희가 고통받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고통받는 자들을 사랑으로 보살피지 않고 기도로 대신할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 가족ㆍ친구ㆍ동료의 복지를 위하여 기도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사랑으로 간구하라. 언제 기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오직 안에 깃드는 아버지의 영이 이끌 것이다.

11. 많은 사람들은 어려울 때에만 기도에 의지한다. 그러한 기도는 경솔하고 잘못으로 이끌 소지가 있다. 모든 일이 잘될 때에도 아버지께 아들로서 간구해야 한다. 진정한 간구, 개인적 기도는 항상 비밀로 하라. 회중 기도는 예외이지만, 영혼의 기도는 개인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적절한 기도는 오직 하나이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12.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늘나라가 확장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예수는 시편 작가의 간구에 대해 가장 좋게 언급했다.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올바른 정신으로 새롭게 하소서.’” 다음 예수는 기도와 경솔한 말에 대해 언급했다. “‘내 입 앞에 파수를 두소서,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이어서 말씀했다. “인간의 혀는 누구도 다스릴 수 없지만, 깃드는 영은 친절한 관용의 목소리로, 자비로운 봉사자로 변화시킬 수 있다.”

13. 지상의 삶에 대한 신의 안내를 구하는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 다음으로 중요하다. 예수는 인간의 지식과 특별한 기술을 기도로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고, 기도는 신성한 영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한 요인이라고 가르쳤다. 기도는 깨우침에 따라, 전심으로, 지혜롭게, 정직하게, 계속하여 성실히 기도해야 함을 설명하였다.

14. 되풀이하는 화려한 언변술, 금식, 고행, 희생물을 바치는 기도가 효력 있을 것이라 생각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추종자들의 기도와 예배에서 감사의 정신이 너무 적게 보인다고 한탄했다. 참된 예배에 이르는 수단으로 감사한 마음의 기도를 사용하도록 신자들에게 권고했다. 성서의 ‘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감사하노라’를 인용했다.

15.“너희의 평범한 필요에 대하여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살면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 것이나, 이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진지하게 감사의 마음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너희가 필요한 것을 펼쳐놓으라.” 그리고 성서를 인용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감사로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뿔과 발굽 있는 수소나 송아지를 바치는 것보다 주를 더 기쁘게 하리라’”

16. 아버지께 기도드리고 나서, 깃드는 영이 혼에게 말할 기회를 주도록 한동안 고요히 받는 자세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인간의 지성이 참으로 예배하는 태도로 있을 때, 아버지의 영이 사람에게 말하기가 가장 좋다. 예배는 유한자가 무한자의 계심 앞에 점점 가까이 이르게 하는 체험이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체험이다.

예수는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에 대하여 많은 다른 진리를 사도들에게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충분히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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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라마에서 멈추다

146:3.1 라마에서 예수는 그리스인 철학자와 토론을 가졌는데, 이 사람은 과학과 철학이 인간의 필요에 충분하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그가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어디에서 와서, 왜,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당신이 떠나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예수는 하늘나라 진리를 이 그리스인에게 가르쳤다. 늙은 철학자는 이 구원의 복음을 즉시 믿었다.

사도들은 그리스인의 여러 주장에 대한 예수의 열린 태도에 당황했다. 나중에 예수는: “믿음의 진실성에 편협함을 가져서는 안된다. 믿음에 대한 완벽한 확신을 가졌을 때 진실한 사람들은 어떠한 비판적인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토마스는 : “주님, 당신의 가르침을 새로 믿는 자가 어떻게 이 하늘나라 복음이 진리인지를 정말로 확신할 수 있습니까?”

예수는 토마스에게 말했다: “토마스, 그런 확신은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진리의 말씀을 믿는 신앙―의 문제이다. 진리인 실체들을 이해하는 것에 영적 믿음을 더하고 의심하는 것을 뺀 것과 같다.

“아들은 아버지의 생명을 날 때부터 부여받는다. 아버지의 살아 있는 영을 받았은즉,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너희는 아버지의 살아 있는 영, 곧 영생의 선물을 가진 신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육체로 사는 물질세계에서 인생이 끝난 뒤에 살아남게 된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 아버지는 그의 영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보낼 것이다.

146:3.6 “혼이 얼마큼 하늘 아버지 영의 가르침과 안내에 맡겼는지는 동료 인간을 사랑하는 정도로 알 수 있다. 얼마 안 있어 진리의 영이 모든 육체에게 퍼부어지겠고, 이 진리의 영은 너희 혼의 영적 재산을 대변하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도록 도울 것이다.

“이 영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알며, 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새 생명의 길을 만들기 위해 내가 왔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졌고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모든 참된 신자가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뚜렷하고 분명한 말씀을 들은 사도들은 새 힘을 얻고 영감을 받았다.

사도들은 계속하여 전도하고, 세례를 주었고,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환자와 고통받는 자를 보살폈다. 요한의 제자들로 사도의 조직은 확대되었다. 이 계획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스불론에서 머무르는 동안 예수의 특별 교육은 하늘나라에서 서로의 의무에 관하여 계속된 토론을 주로 다루었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과 사회적ㆍ종교적 의무를 가진 친교 관계, 이 둘의 차이를 밝히려고 고안된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생애 전체를 통하여 예수는 종교를 사회 조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하여 추종자들에게 가르침을 거의 주지 않았다.

146:3.11 스불론 사람들은 혼합된 종족이었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라 할 수 없었다. 가버나움에서 병자들을 고쳤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아무도 정말로 예수를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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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론에서 복음을 전하다

146:4.1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은 갈수록 예수를 적대하게 되었지만, 다른 도시에 있는 회당들에 대하여 통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때 갈릴리와 유대의 모든 회당은 예수에게 문을 열고 있었다.

광부의 생애를 함께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이론에서 머무르는 동안 광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병 고치는 사람으로서 예수의 이름이 퍼져 있었다. 문둥병자의 경우를 제외하고 기적을 행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크게 유익함을 얻었다.

이론에서 사흘째, 광산에서 돌아오면서 좁은 샛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문둥병자가 무릎을 꿇고 예수에게 대담하게 인사를 드렸다. “주여, 당신이 원하시기만 하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 말은 문둥병자는 회당에 들어가거나 대중 경배에 참석할 수 없기 때문에 문둥병을 치유받지 못하면 하늘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는 손을 뻗어 그를 어루만지며 "깨끗하여라" 말하니, 그는 즉시 고침을 받았다.

예수는 그가 병 고침 받은 것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그는 지시한 대로 하지 않고, 마을에 두루 예수가 그의 문둥병을 고쳤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 결과로 주는 병자들에 너무 둘러싸여서, 이튿날 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문둥병자를 이렇게 고친 것은 이때까지 예수가 마음먹고 계획하여 행한, 이른바 첫 기적이었다.

146:4.6 기스칼라로 가서 이틀 동안 복음을 선포하고, 코라진에서 한 주를 보냈지만, 하늘나라로 들어오는 신자를 많이 얻지 못했다. 마돈에서도 운이 좋지 않았다. 사도들은 예수가 치유자라는 말을 삼가라고 고집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예수가 능력을 드러내서 사람들의 눈을 끌기를 얼마나 바랐는가! 아무리 설득해도 주는 꼼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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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나로 돌아와서

146:5.1 가나로 돌아온 후 사흘째에 가버나움의 어떤 특출한 시민, 타이투스가 도착했다. 그는 얼마큼 믿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들이 위독했다. 그는 예수가 가나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고, 그래서 서둘러 예수를 만나러 갔다.

이 귀인은 예수에게 가버나움으로 같이 가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했다. "내 아이가 죽기 전에 오십시오. 내가 떠날 때에 그가 죽을 지경에 있었습니다." 예수가 한순간 명상에 잠겼다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라, 너의 아들이 살 것이다." 타이투스는 예수의 말씀을 믿었고, 집에 가서 물어보니, 예수가 말씀하신 시간쯤에 아들이 낫기 시작한 것을 알았다. 타이투스는 이때부터 마음을 다하여 믿었고, 그의 아들은 하늘나라의 힘찬 봉사자가 되었다. 나중에 로마에서 처형 받은 자들과 함께 목숨을 바쳤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다만 자연법칙 과정의 사전 지식을 이용한 경우였다.

마을 사람들은 물과 포도주를 기억하였고, 아주 먼 거리에서 예수가 귀인의 아들을 고쳤다고 생각했으며, 사람들은 병자와 고통받는 사람들만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병자들을 먼 거리에서 고치라고 요청하는 전령들을 보냈다. 온 시골이 떠들썩해지자, “나인으로 가자.”고 예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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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인(Nain) 그리고 과부의 아들

146:6.1 이 시대의 사람들은 기적을-찾는 세대였다. 예수의 개인적 봉사를 기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신경질환으로 고생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앞으로 왔고, 그리고 나서 예수가 그들을 고쳤다고 외쳤다. 그들은 기적으로 고침 받았다고 생각했다.

예수가 가나를 떠나 나인으로 갈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그들은 기적과 이적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예수와 사도들은 나인에서 한 과부의 외아들 장례행렬을 만나게 되었다. 과부와 그 친구들은 주를 알아보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사람들이 성가시게 졸라대서, 예수는 들것의 덮개를 열고 소년을 들여다보았다. 소년이 죽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그 어머니에게 말했다: “울지 말라. 당신 아들은 죽지 않았고 잠자고 있다.” 소년의 손을 잡고 말했다, “깨어 일어나라.” 죽었다고 생각된 소년이 바로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소년이 잠들어 있었고, 죽음에서 살려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인 마을 전체가 열광의 극치에 이르기까지 자극을 받았다. 소년이 죽지 않았다고 예수가 말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예수의 말버릇이고 겸손하게 기적을 감추려 한다고 말했다.

갈릴리, 유대까지, 예수가 과부의 아들을 살려냈다는 말이 퍼졌다. 후일의 모든 기록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예수는 충분히 그들에게 강조했다. 누가는 이 사건을 전해들은 그대로 이야기를 기록했다. 사람들에게 너무 에워싸여서, 이튿날 일찍 엔도르를 향하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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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엔도르에서

146:7.1 엔도르에서 예수는 사도들에게 사울 임금과 엔도르의 마녀 이야기를 해주었다. 죽은 자의 영의 흉내를 내고 그릇된 길에 빠진 중도자들이 곧 억제될 것이며, 주가 진리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퍼부은 후, 더러운 영 존재들이 허약한 필사자에게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을 떠난 인간의 영은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오직 한 섭리 시대가 지난 뒤에, 특별한 경우에만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틀 후에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지금쯤 사람들이 흥분에서 얼마큼 회복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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