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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4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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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0 편 알렉산드리아의 로단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29년 9월 18일 ~ 9월 25일
. 장소 : 마가다 공원


9월 18일 (일요일), 안드레는 다음 주에 아무계획도 없다고 발표했다. 나다니엘과 토마스를 제외한 사도들은 모두 가족과 친구들을 찾아보려고 집으로 갔다. 나다니엘과 토마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이라는 그리스인 철학자와 토론하느라고 바빴다. 로단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브너 동료의 가르침을 통해서, 최근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로단은 자기의 생활 철학과 예수의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을 조화시키는 일에 진지해 있었다. 그는 이 일로 예수나 그의 사도 중 한 사람으로부터 직접적이고 권위적인 복음을 확보하기 원했다. 예수는 로단과의 회담은 거절했지만, 그를 정중하게 받아들였고, 나다니엘과 토마스에게 그의 말을 다 듣고, 복음에 관하여 말해주라고 즉시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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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단의 그리스 철학


160:1.1 월요일 아침 일찍, 로단은 나다니엘, 토마스, 그리고 마가단에 들린 25명 남짓한 신자 집단에게 열 번 연속된 강연을 시작했다. 현대의 표현으로 하면 이렇다.


인생은 세 가지 욕구―충동ㆍ욕망ㆍ유혹―에 담겨 있다. 강인하고 위엄있는 인격은 이 자연스러운 충동을 상급 욕망으로 변화시킴으로 얻는다.


문명이 복잡하게 될수록, 살아가는 기술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진보가 계속되려면 10세대마다 인류는 삶의 기술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만약 생활기술의 진화가 인간이 존재하는 기법의 진화와 발걸음을 맞추지 못하면, 인류는 현재 욕망의 만족으로 재빨리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인류는 미숙한 채로 남아 있고, 사회는 완전히 성숙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사람이 근시안적 욕망의 만족을 버리고 얼마큼 이상적 목표를 택하는가, 이것이 사회의 성숙도를 가리키는 지표이다.


동물은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사람은 가치 기준을 인식하고 의미 있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또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깨닫는다―통찰력을 가졌음을 스스로 의식한다.


160:1.6 인간 사회는 두 가지 문제, 곧 개인의 성숙과 종족의 성숙에 이르는 문제에 부닥친다. 성숙한 인간은 부모가 자식에게 품는 것과 같은 사랑과 배려로 미숙한 사람을 바라본다.


인생에서 성공은 평범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법을 통달하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안전한 옛 망상, 그리고 오래도록 간직했던 거짓된 안정감에 달라붙기를 더 좋아한다. 성실하고 논리적인 지성이 발견하는 것을, 용감한 사람만이 두려움없이 솔직하게 인정할 것이다.


인생에서 생기는 문제의 해결은 개인적인 편전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두려움 없는 논리가어디로든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물질적 문제와 다양한 지적 위험이 가득한 목표를 추구하도록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위대한 이상의 유혹이 필요하다.


인생의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려고 유능하게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동료들의 협동을 얻게 만드는 지혜와 매력 있는 인격을 갖추지 않으면,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당신은 다지 요령과 관용이 있어야만 한다.


문제 해결 방법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을 나는 예수로부터 배웠다. 그것은 아버지와 교통하는 것이다. 그가 한결같이 실천하는 것, 그리고 충실히 너희에게 가르친 것, 곧 예배하는 정신으로 따로 명상에 잠겨 있는 것이다. 이 버릇에서, 생활의 보통 갈등을 다룰 힘과 지혜를 모을 뿐 아니라, 또한 도덕적ㆍ영적 성질을 가진 상급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법이 발견될 것이다.


160:1.11 예수가 혼자서 따로 가는 버릇에 나는 깊이 감명을 받는다. 다른 뜻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하려는 것―“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주가 실천한 바와 같이,예배하는 휴식, 곧 영적 교통은 긴장을 해소하고 갈등을 없애며, 성격의 총 재산을 힘차게 늘인다. 이 모든 철학과 하늘나라 복음을 더하면, 내가 알기에, 새 종교가 된다.


편견은 이기심과 연결되어 있다. 자아의 추구를 버리고 하나님을 추구해야 편견을 없앨 수 있다. 성격이 성숙하다는 증거는, 가장 높고 가장 신성하게 실재하는 가치의 실현을 항상 추구하도록 인간의 소망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오직 하나님을 발견하고 받아들인 자가 안정된 인격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목표를 시간에서 영원으로, 땅에서 파라다이스로, 인간다운 것에서 신다운 것으로 바꾸는 것은 사람이 다시 태어날 것을 요구한다. 내가 가르치는 철학은 여러분이 전파하는 복음과 연결되어 있고 성숙한 새 종교, 모든 미래 세대의 이상을 대표한다.


나의 철학은 나에게 참으로 달성할 실체, 성숙의 목표를 추구하려는 충동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추구는 지향할 확신이 없었고 나의 탐구는 추진력이 모자랐다. 예수의 복음이 이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의심과 불안이 없이, 나는 이제 진심으로 영원한 모험에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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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아가는 기술


160:2.1 세상을 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동물적인 방법인 물질적인 것과 인간적 방법인 영적인 길이다. 동물은 신호와 소리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지만 가치나 생각을 전달하지 못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가치나 사상, 이상을 식별할 수 있는 상징을 통해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은 성격을 개발할 수 없지만, 사람은 동료들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격을 개발한다.


인간의 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관계를 통하여 문명을 세우게 하는 것은 뜻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이 능력이다. 지식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달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종족의 문화 활동, 즉 예술ㆍ과학ㆍ종교ㆍ철학이 일어난다.


인간들 사이의 교통은 사회 집단의 형성을 예시한다. 모든 집단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가족, 즉 부모이다. 사랑하는 관계는 다음 이유로 사람을 훌륭하게 만든다.


우정과 사랑의 관계는 서로 간에 교제와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며, 상급 수준에서 다음의 필수 요소를 권장하고 수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 서로 자아를 표현하고 자아를 이해하는 것.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어느 정도 인정과 평가를 받는 것은 인품의 성장에 필수이다. 모든 사회 관계에서 이상적인 것은 결혼이다. 나는 가족 생활을 찬미하는데, 너희의 선생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 하늘나라 복음의 주춧돌로 삼았기 때문이다.


2. 사람들의 연합―지혜의 동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개념을 얻고 다음 세상에 대하여 어떤 선견을 얻는다. 두려움과 자만은 오직 다른 지성들과 가까이 접촉해야 막을 수 있다. 주는 언제나 너희를 둘씩 내보낸다. 지혜는 초월 지식이니까, 지혜를 통합할 때 사회 집단은 작건 크건 서로 모든 지식을 함께 가진다.


3. 살려는 열심. 사랑하는 인간 관계는 인생의 슬픔과 어려움을 맛볼 때, 고통의 쓴 맛을 많이 가시게 한다. 인간의 우정에서 더할나위 없는 한 가지 영광은 이렇게 서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과 가능성이다. 큰 영적 힘은 공통되는 명분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것, 곧 우주의 신에게 공동으로 충성하는 것을 의식하는 데 본래부터 생긴다.


4. 모든 악에 대하여 강화된 방어. 어려움ㆍ슬픔ㆍ실망ㆍ실패는 혼자 겪을 때 더 고통스럽고 마음 아프다. 선생의 말씀대로, “슬퍼하는 자는 행복하나니”―친구가 위로하려고 가까이 있으면 그렇다. 사람은 고립된 가운데 시든다. 오직 영원의 동그라미를 한 번 보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도록 북돋아주며, 이렇게 최선을 다할 때, 사람은 다른 사람들, 시간과 영원 속에서 함께 사는 동료들의 이익을 위하여 가장 사심 없이 살 수 있다.


160:2.10 결혼 바깥에서 많은 것을 성취하고, 허다한 결혼이 영적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참말이다. 이상적 결혼은 단순한 성적 매력보다 더 안정된 무엇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서로 몸소 헌신하는 데 바탕을 두어야 한다. 믿을 만한 가족들을 세울 수 있다면, 그러한 단위들이 모여서 도덕적으로 성숙한 문명을 이룰 것이다. 그러한 종족은 여러분 선생의 이상, “땅에는 평화요, 사람들 사이에 선의”와 같은 무엇을 비로소 실현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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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숙으로 이끄는 유혹


160:3.1 성숙하려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주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 산다.” 혼 속에 있는 이 무한한 힘을 어떻게 방출하도록 유도하는가? 이 모든 문제의 신비는 영적 교통, 경배에 감추어져 있다. 명상은 정신이 영과 접촉하게 만든다. 허약함을 버리고 힘을,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가지는 것이, 예배의 본질을 이룬다.


이러한 체험이 버릇으로 되풀이되면, 동료들이 그러한 성숙한 성격으로 인식한다. 이 습관은 처음에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버릇이 되면 즉시 휴식을 주고 시간을 절약한다. 사회가 더욱 복잡해질수록 문명의 유혹이 증가한다. 영적 에너지를 보존하고 증대하기 위해 이런 습관이 필요하다.


성숙의 또 다른 요건은 사회 집단들이 협동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미숙한 사람은 동료의 반감을 일으킨다. 성숙한 사람은 동료들에게 진심어린 협동을 얻으며, 그 얻는 열매를 여러 배로 늘인다.


필요하다면, 옳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방어하기 위하여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숙한 인격을 가진 주는 수완과 관용으로 승리를 품위있게 얻는다. 주는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문을 부수기보다 열쇠로 문을 연다.”


이 하늘나라 복음은 살아가는 기술에 크게 쓸모가 있다. 사람은 더 낮은 수준의 생각―걱정ㆍ질투ㆍ시샘ㆍ앙갚음, 그리고 미숙한 성격의 자만심―의 물질적 염증을 초월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목적은 쉽고 일시적인 달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열심히 지켜져야 한다. 또한 광신주의의 비참한 위협을 능히 이길 정도로 길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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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균형을 이룬 성숙


160:4.1 영적 성장을 이루려고 마음을 다하면서, 너희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인생의 두 가지 중요한 문제는, 현세의 생활을 꾸려 나가면서 영원히 살아남기를 성취하는 것이다. 생계를 잇는 문제조차도, 이상적 해결에는 종교가 필요하다.


160:4.2 현세의 생활에 필수인 것들은 내가 보건대 다음과 같다.


1. 육체의 건강

2. 맑고 깨끗한 생각

3. 능력과 기술

4. 재산―생활에 쓰이는 물품

5. 실패를 견디는 능력

6. 문화―교육과 지혜


건강과 능률에 관계되는 신체의 문제조차 종교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최선이다. 육체와 지성은 신들의 선물이 거하는 자리이다. 이처럼 사람의 지성은 물질인 것과 영적 실체 사이에 중재자가 된다.


사람이 날마다 충실히 하는 일에 대한 댓가로 물질로 보상받을 것이란 생각은 완전히 잘못이다. 잘 조직된 어떤 경로의 일부가 되어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직 이 경로에서 기울인 노력에 대하여 충분히 보상 받을 것을 기대해도 좋다.


160:4.11 능력은 물려받는 것이요, 기술은 얻는 것이다. 능력은 선견, 멀리 내다보는 눈을 선물로 받았음을 뜻한다. 후일의 보상을 위하여, 정직하게 기꺼이 수고하라. 기쁨을 추구하는 자로서, 사람은 소비자일 뿐 아니라 생산자가 되려고 언제나 노력해야 한다.


인생에서 힘을 주는 가치있는 사건들을 간직하도록 기억을 훈련하라. 모든 기억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은 훌륭한 우정을 나누는 위대한 순간을 소중히 회상하는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기를 결코 망설이지 말라. 속이는 웃음과 활짝 웃는 낙천주의 밑에 실패를 감추려 하지 말라. 성공했다고 우기는 말은 언제나 듣기 좋지만, 마지막 결과는 끔찍하다. 그러한 수법은 비현실 세계를 지어내고 궁극에는 미몽 에서 깨어나는 불가피한 파멸로 바로 이끈다.


지혜는 사람이 실패한 결과에 적응하는 체험에서 생긴다. 낙관적 망상을 현실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지혜롭게 될 수 없다. 지혜는 사실과 이상, 이 두 가지를 포함하며, 사실을 무시하는 이상주의자, 그리고 영적 안목이 없는 물질주의자, 이 두 극단을 피하게 한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실패는 다만 교육이 되는 사건이다. 실패는 다만 더 높은 수준의 우주 실체를 성취하는 데 쓰이는 새 연장일 뿐이다.


160:4.16 현세의 인생이 압도적 실패로 보인다 하더라도 실패 하나하나가 영적 성장을 낳는다면, 영원의 각도에서 볼 때 큰 성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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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상적인 자의 종교


160:5.1 여러분의 선생은 인간의 진정한 종교가 개인이 영적 현실을 체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뜻으로 종교는, 실체의 이상에 대한 우리의 가장 높은 개념과 영원한 영적 달성 가능성을 향하여 우리의 지성이 미치는 가장 먼 한계까지 우리가 최고로 헌신함을 상징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종교적 충성을 받는 대상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종교는 일종의 행위이다. 종교는 보편적으로 찬미를 받아 마땅하다고 우리가 판단하는 어떤 실체를 향하여 경건하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포함한다.


종교적 헌신의 대상은 물질이거나 영적이거나, 거짓되거나 참되거나, 현실이거나 비현실이거나, 인간답거나 신성할지 모른다. 따라서 종교는 선하거나 악할 수 있다.


도덕과 종교는 반드시 같지는 않다. 종교적 충성을 받을 최고의 이상을 구성하고, 섬기는 자의 종교적 헌신을 받는 이것, 이 분, 이 상태 또는 서열의 존재, 또는 달성 가능성이 하나님이다.


영원한 하나님이라는 이상이 없이 사람은 영적 종교를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이 없는 종교는 사람의 발명품이다.


160:5.6 하등 종교는 자연 상태에 대처하려고 자체의 하나님 관념을 형성한다. 상급 종교는 종교적 이상의 요구를 만족시키려고, 인간의 마음이 바뀌기를 요구한다.


예수는 아버지를 무한한 실체의 이상으로 묘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과 형제임을 믿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가장 높은 종교 개념이다. 내가 선언하건대, 그러한 개념은 최상이고 궁극인 것의 이상적 모습을 체험하는 것이다.


주는 그가 아버지로부터 왔고, 우리에게 길을 보이리라 하신다. 그가 진실을 말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영원한 우주의 아버지와 동떨어져서, 달성할 수 있는 현실의 이상이나 완전한 가치가 하나도 없다고 나는 마침내 확신한다.


최고의 이상이 실재한다면, 이 이상에 바치는 헌신은 현재와 미래 우주의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틀림없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나는 최선에 이른 종교를 본다. 주가 말씀하지 않았는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목숨을 잃어야 한다. 내가 평화를 가져오려고 왔다고 생각지 말라, 오히려 혼의 투쟁을 가져오려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헌신하는 값을 치른 뒤에, 거룩히 헌신하여 사는 이 영적 길을 줄곧 걷는다면, 우리가 큰 평화를 맛본다는 것이 참말이다.


160:5.11 온 인류가 이 최고의 진리를 담은 공동체의 환상으로 인하여 기쁨에 떨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그치지 않고 기도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된 바와 같이, 우리의 하나님 개념은 ‘하나님이 영이요’, 우리의 동료에게 전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사랑이다.’는 것이다.


예수의 종교는 생생한 영적 체험을 요구한다. 주의 가르침은 진정하게 영이 진보하는 실제 수준에 이르기를 요구한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충동을 의식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몸소 겪는 체험이 되어야 참된 종교가 된다.


이렇게 위대한 그리스인 철학자의 논설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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